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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아스팔트로 올라온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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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제주 바다에서는 우뭇가사리 수확이 한창이다. 이맘때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면 '우미'라고도 불리는 이 자줏빛 해초를 채취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수면 20~30m 아래에서 자맥질로 캐 올리는 우미는 그 상품성이 높아 대부분 미국과 일본으로 수출된다. 해녀들 연소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니, ‘여름 우미 수확을 잘해야 1년을 먹고산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 17일 제주 북동쪽 구좌읍 월정리 바다에서는 해녀 숨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우미철이 도래했으나, 이곳 해녀들은 올해도 수확을 포기했다. 위치상 이 마을 양옆으로 잇닿아 있는 행원리와 김녕리만 해도 해안도로 가장자리에서 우뭇가사리가 즐비한데 월정리 일대는 텅 비어 있다. 그 많던 우뭇가사리는, 월정 바다 해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월정은 제주 안에서도 좋은 바다로 손꼽혔다. 하수처리장이 생기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60년을 한 곳에서 물질을 이어 온 월정리 해녀들에게 우뭇가사리가 사라진 영문을 물으면 하나같이 ‘해녀 바당(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다)’ 앞 동부하수처리장을 가리켰다. 13세 때 바닷일을 시작한 해녀 김영자(71)씨는 “매일같이 한 바다를 수십 년 지켜봐 온 우리는 하수처리장이 들어온 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다”면서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자손들이 나처럼 ‘똥물’을 먹게 될 걸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월정리 해녀회장인 김영숙(71)씨는 “바다는 기본적으로 짠물인데, 하수도를 통해 대량의 단물(민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면서 “그 물을 오래 맞은 소라나 우미들은 그 변화를 배겨내지 못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옛날엔 바닷일을 하면서 생계도 꾸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워졌다”면서 “해녀들은 울다시피 하면서 이 아스팔트 바닥에 나와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월정리에 위치한 동부하수처리장은 2007년 6,000t 규모로 가동을 시작해 2014년 1만2,000t으로 1차 증설을 마쳤고, 2017년에는 2차 증설 계획(2만4,000t급)을 발표했다. 급속도로 관광산업이 팽창하고 상업지구가 확대되면서 하수처리 인프라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월정리 해녀들은 2차 증설 계획 발표 이후 5년 넘게 바다가 아닌 하수처리시설 앞 아스팔트로 근거지를 옮겨와 생존권을 걸고 저항하고 있다.
지난 19일 동부하수처리장 입구에서 열린 ‘용천동굴 지키기 범국민 운동 선포 기자회견’에는 해녀 30여 명과 수십 명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는데, 유독 해녀들은 얼굴을 꽁꽁 싸맨 채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마을 막내뻘 해녀인 김은아(48)씨는 “공사·도로 통행 방해한다고 시공사가 직접 해녀들이랑 활동가들을 채증해 고소하는 바람에 모두 경찰 조사를 받고 왔다”면서 “생존권을 걸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에는 하수처리장에 진입하는 굴착기를 몸으로 막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돼 수갑을 차기도 했다. 김씨의 모친인 해녀 오복양(78)씨는 “바당을 덮어주던 이불 같던 해초가 사라지고 나니 더불어 살던 오분자기(떡조개 방언)나 소라도 씨가 말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엔 하수처리장 앞 도파당(해녀 바다)이 물건도 가장 많고 깨끗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사는 죽은 바당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주자치도는 공사를 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는 지난 19일 동부(월정) 공공하수처리시설 증설사업에 대해 시행승인 결정을 내리고 이달 내로 사업부지 경계에 가설 울타리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후 진동영향범위 등 문화재청의 사업승인 조건을 이행한 뒤 터파기 공사에 돌입한다.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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