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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사회와 격리가 정의"… 국민 70% "사형제 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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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형수 59명은 여전히 수감 생활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이르면 올해 세 번째 판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헌재 결정을 앞두고 사형제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소모적 공방을 지양하고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이렇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을 보니 도저히 용납이 안 됐습니다. 생명을 너무 많이 박탈한, 인간으로서 살기를 포기한 악질 범죄자를 사형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회를 지키는 게 맞다고 봅니다."
검사 출신인 조재빈 변호사는 지금도 2002년 '양평 휴양림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을 떠올리면 치를 떤다. 부유층을 상대로 투자 사기를 벌여왔던 정운하가 대학교수로 위장한 뒤 중소기업 사장 부부에게 접근해 돈을 빌린 게 사건의 시작. 사기 행각을 감추려고 사장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범행 은폐 목적으로 사체에 불까지 냈던 끔찍한 결말. 사건 발생 초기엔 일가족 동반자살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결국 타살로 밝혀졌다. 검찰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조 변호사는 결국 정운하의 사형을 이끌어냈다.
조 변호사에게 사형은 여전히 필요한 제도다. 그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흉악범을 사회와 영구히 격리시키는 게 정의이며, 우리 사회를 지키는 방편입니다." 그의 말에는 사형제 존치론자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부분의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형벌의 비례성과 응보적 정의 관점에서 사형제를 설명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범죄자는 그의 생명을 박탈하는 중형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사적 복수가 금지되는 현실을 꼬집어 말한다. 국가가 흉악범을 대신 엄벌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분노와 아픔을 어루만져줄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형사 전문 채다은 변호사는 "사형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반 시민들의 마음까지 연결해 생각해야 한다"며 "사회 전체에 대한 위로로 확장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존치론자들은 사형이 사회 질서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고 본다. 1995년 10월 여성 3명을 살해한 임명기(현재 사망)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가 "자유형을 선고하는 경우 사회에 또 다른 위험과 불안 요소를 남겨 놓게 된다"고 선언한 것처럼, 흉악범을 사회에서 영구 격리해 유족과 잠재적 피해자들에 대한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도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현재는 많은 국가에서 사형제 폐지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지만, 사형은 엄연히 수천 년 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온 형벌 제도였다. 그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되며, 현재까지도 찬성 여론이 높은 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여론 조사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가인권위원회(2018년)와 한국갤럽(2022년)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7명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의 존폐를 고려할 때는 그 영향권에 놓인 시민들의 생각과 사회적 배경도 고려해야 한다"며 "집행이 26년째 되지 않는데도 사형제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87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55개국은 한국과 달리 사형을 실제 집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등 20개국에서 883명의 사형이 집행됐는데, 이는 전년보다 53% 증가한 수치다. 사형을 '구시대적 형벌'로 치부하거나, 한국인만의 특별한 정서로 봐선 안 된다는 게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쉽게 결론내릴 수 없다"고 반박한다. 살인 범죄는 사회경제적 요인 등 복합적 이유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형제만 갖고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따지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란 얘기다.
법무부는 심지어 사형의 범죄 예방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형제 공개 변론에서 "영국은 1965년 사형 폐지 이후 20년간 살인죄가 그 이전 20년에 비해 60% 증가했고, 계획적 살인도 늘어났다"며 "사형수들의 잔혹성과 패륜성은 사람들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사형제는 범죄를 억제한다"고 밝혔다.
존치론자들은 판사의 오판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젓는다. 조재빈 변호사와 채다은 변호사는 "우리 사법 체계는 누가 봐도 악질적인 흉악범에게만 사형을 내리기 때문에 오판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더 나아가 "헌법에서도 사형 제도의 존재와 운용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헌법 110조 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범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해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적혀 있다. 헌법에서 사실상 사형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헌재 공개변론에서 "비상계엄 선포 등 예외적 상황에서만 사형을 인정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 조항의 도입 의도와 역사적 맥락과는 맞지 않다"며 "사형을 위헌으로 보는 것은 법 규범의 통일성과 충돌된다"고 주장했다.
◆ 다시 쓰는 사형제 리포트
<1> 죄와 벌, 그리고 59명의 사형수
<2>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3> 두 번의 합헌, 세번째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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