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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만 대변하지 않는, 낡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모두를 위한 '저널리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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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이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 내려진 지는 오래다. 수년 동안 언론이 가야 할 방향을 묻는 콘퍼런스가 열리지만 뾰족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언론학자들은 황폐화한 언론 환경을 비판하고 성토하며 언론 신뢰가 밑바닥이라는 연구 결과는 매해 경신된다. 대중은 언론인을 멸칭으로 부르고 갈 길 잃은 언론인들의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한국만의 상황일까. '저널리즘 선언'은 지구촌 곳곳의 저널리즘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선언문 형식으로 진단하고 '개혁'과 '혁명'이라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영미권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세 명이 썼다. 그간 국내 언론을 향한 비판은 담론장에서 활발하게 생성되어 왔지만 비교적 선진적이라 평가받는 영미권에서조차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지 못할 정도로 저널리즘이 망가졌다는 분석에 가슴 한편으로 찬바람이 지나간다.
저자들은 '엘리트, 규범, 수용자'라는 세 가지 열쇳말에 주목해 저널리즘이 어떻게 현실과 괴리되어 가는지를 파헤친다. 언론은 뉴스 소재를 얻기 위해 엘리트와 공생해 왔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진보를 이룬 국가에서마저 민주주의가 퇴행하면서 정치적 엘리트 시스템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언론인과 정치인, 관료 등 엘리트 집단을 신뢰하지 않는다. 흔히 규범은 꼭 따라야 하는 덕목으로 여겨지지만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무비판적으로 고수하는 기자 정신이나 윤리 강령, 저널리즘 원칙 등은 오히려 저널리즘의 역할을 협소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저널리즘의 든든한 옹호자여야 할 수용자는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뉴스 이외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등 온갖 다채로운 콘텐츠가 수용자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는데도 언론은 자신들이 중요하는 이슈(주로 국가의 안녕과 관련한 경성 이슈)를, 수용자가 알고 싶어 한다고 혹은 최소한 알아야 한다고 가정하며 고립을 자처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종국에 저널리즘 앞에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개혁 노선을 선택할 경우 저널리즘은 '자유민주주의'의 명백한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처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 선출된 인물일지라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면 선명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의미다. 혁명의 노선은 자유민주주의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이다. 엘리트가 전혀 없는 저널리즘, 이상적 규범보다 현장의 쓸모를 우선으로 하는 저널리즘, 주변부의 소외된 이들을 포함한 모두를 위한 저널리즘의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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