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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이라는 '힘만 센' 소수의견

입력
2023.05.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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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 앞 농성장에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 회장은 간호법 의료인면허취소법 저지를 위해 8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뉴시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 앞 농성장에서 순천향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 회장은 간호법 의료인면허취소법 저지를 위해 8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뉴시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의 붕괴 현상을 다루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 기획 시리즈 '의사캐슬 3058'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의사들을, 더 정확히는 의협(대한의사협회)을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의사 이익을 조금이라도 침해하거나 의협 주장에 반(反)하는 내용을 기사로 썼다가 문자 폭탄, 메일 테러, 소송 협박에 시달렸다는 동료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의료 정책을 국민의 이익 관점에서 고민해야 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나 전문가들도 의사들에게 밉보였다가 '좌표'가 찍혀 곤욕을 치렀다는 경험담도 들려왔다. 역대 정권이나 정치권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의사들 눈치 보는 데 급급했던 걸 보면 괜한 엄살은 아닌 듯했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판에도 집단 파업을 불사할 만큼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의사 단체 아니던가.

하지만 거듭된 실력행사도 근본 해결책은 아닌 듯하다. 최근 의료 공백을 체감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특정 의료 직역 대표 단체에 온 나라가 끌려다니는 게 온당하냐는 성토가 거세지는 걸 보면 말이다. 의사들은 여전히 강경하고, 국민은 더 크게 분노하고. 출구 없는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작금의 한국 의료계 현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선 한 가지 질문에 먼저 답을 구해야 했다. '의사들은 정말 기득권만 지키려는 이기적인 집단일까.'

막상 호랑이 굴(의사 캐슬)로 들어가 보니 반감은 반전됐다. 현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의사 한 명, 한 명이 내는 목소리는 다채로웠고 합리적이었다. 의대 정원과 관련해 '필수 및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의사 수를 지금보다는 늘리긴 늘려야 하지만 실질적인 유인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부 협상론부터 '양심 없는 의사들을 걸러내기 위한 자정도 필요하다'는 내부 자성론까지. 의사 집단 전체로 뭉뚱그렸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귀한 '소수의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대를 해도 이유 있는 반대였다. 왜곡된 수가 구조를 방치하고, 필수 의료 종사자에 대한 정의로운 보상 시스템 개선이 없는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는 현장 의사들의 지적은 정당하고도 필요한 문제 제기였다. '정원 확대냐, 수가 인상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할 게 아니라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공감대가 높았던 건 많은 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마도, 해법도, 설득도 '디테일'에 있었던 것.

그럼에도 현장 의사들의 절절한 목소리는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았다. 협상 전략일지는 몰라도 선명한 반대만을 외치고 보는 의협 논리만 크게 부각된 탓이었을 게다. 하지만 모든 사안마다 강경 일변도로 흐르는 의협 행보를 모든 의사가 마냥 다 반길지는 의문이다. 수적으로 많은 개원의 위주 의사결정 시스템, 강경 투쟁 노선 고수에 따른 피로감 등 여러 이유로 의협과는 거리를 두려는 현장 의사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대표성이,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강경파만 득세하면 남는 건 결국 극단의 갈등과 고립뿐. 대한민국에서 '힘만 센' 소수의견으로 남지 않으려면 의협도, 의사 개개인도 보다 열린 마음으로 의료 개혁 논의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마침 24일부터 의료현안협의체가 재가동된다고 하니 의협과 정부 공히 슬기로운 협상안을 도출해 내길 기대해 본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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