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이빨 좀 없으면 어때?" 고수 멍집사의 남다른 마음가짐

입력
2023.05.22 09:00

'반려 고수'를 찾아서

보호자님, 얘 발치 비용은 한 개 뽑은 걸로 받을게요. 다른 이빨들은 발치 수술이 필요 없을 만큼 잘 빠졌어요.


지난달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은 반려견 '달래'의 이빨. 치주질환으로 인해 뿌리부터 썩어 있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지난달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은 반려견 '달래'의 이빨. 치주질환으로 인해 뿌리부터 썩어 있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지난달,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재윤 원장은 반려견 ‘달래’(12세 추정) 보호자 이시연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발치가 예정된 달래의 이빨은 5개였지만, 김 원장은 “원래 발치를 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상당히 많은 치과 기구를 사용해 신중하게 뽑는다"면서 “그런데 달래의 이빨 4개는 그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이 수월하게 뽑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진료비를 아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달래의 이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달래는 처음 시연 씨의 반려견이 됐을 때부터 치주 질환을 달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5년 전인 2017년 12월 달래를 입양한 이래 매년 한 번씩 달래의 이빨에 낀 치석을 제거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아 스케일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심각해진 치주 질환은 나아지기 어려워서 이제 달래에게 남은 치아는 송곳니 4개와 앞니뿐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언뜻 심각해 보이는 상황을 전하는 시연 씨의 목소리에는 걱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한껏 묻어 나왔습니다.

발치 이후 달래의 이빨은 어금니 4개와 앞니 일부만 남았지만,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발치 이후 달래의 이빨은 어금니 4개와 앞니 일부만 남았지만,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우리 달래 잘 지내고 있어요. 원래 뛰어노는 걸 즐기지 않아서 그렇지, 아프지 않고 밥도 잘 먹고 있어요.

번식장서 받아먹었던 잔반.. 치주 질환의 시작


지난 2017년 경기 시흥시의 한 번식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개들 일부가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다. 달래는 이곳에서 살던 수컷 종견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2017년 경기 시흥시의 한 번식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개들 일부가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다. 달래는 이곳에서 살던 수컷 종견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2017년 11월,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번식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번식장에 있는 개들 중 26마리가 질식해 죽었고, 78마리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당시 강아지들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 제멋대로 자라난 털은 잔뜩 엉켜 있었고, 불에 그을리기도 했습니다. 개들은 평생을 뜬장에서만 살아온 듯, 처음 밟은 땅을 어색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달래는 이곳에서 종견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시연 씨가 임시보호를 거쳐 입양을 결정한 덕에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래도 번식장에서 지내온 친구들처럼 난생처음 맞이한 자유를 어색하게 느꼈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달래가 처음 집으로 온 날의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달래가 집에 온 지 한나절이 지나도록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눕지도 않았죠. 마치 거길 벗어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것처럼요.


시연 씨의 집에 처음 도착할 당시 달래의 모습. 한 공간에 앉아 있는 달래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시연 씨의 집에 처음 도착할 당시 달래의 모습. 한 공간에 앉아 있는 달래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산책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갈 때면 달래는 늘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곤 했다고 합니다. 시연 씨는 “달래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려고 땅에 딱 내려놓는데 걷지를 않았다"며 “어쩌면 집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편안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듯했다"고 당시를 설명했습니다. 보통 반려견 보호자들은 실외 배변만 하는 강아지들을 걱정하지만, 달래는 오히려 집 안에서만 배변을 봤다고 합니다. 마킹이라도 좀 하면서 다른 개들과 소통하기를 바랐지만, 달래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헌신적인 돌봄 덕에 달래의 마음은 조금씩 열렸습니다. 주 양육자인 시연 씨를 알아보고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다른 가족들도 잘 챙겨주고 있지만, 그래도 달래는 나를 더 많이 찾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연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달래의 이빨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원인도 달래를 괴롭게 했던 번식장에 있었습니다. 김 원장은 “달래의 이빨에는 치석이 다른 반려견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치석이 많은 경우는 사람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는 “건식 사료만 먹는 반려견의 경우 치석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습식 사료나 잔반, 밀가루가 많이 섞인 음식을 먹으면 이빨에 음식물이 잘 달라붙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번식장은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 잔반을 주로 사용한 만큼 치석이 생기기 더 쉬운 환경이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 안 아프게 돕는 선택이에요”


입양 이후 시연 씨는 달래에게 건사료만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면 추가적으로 치주질환에 노출될 확률은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입양 이후 시연 씨는 달래에게 건사료만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면 추가적으로 치주질환에 노출될 확률은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사실 아픈 치아를 뽑아주고 나면 크게 관리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건식 사료만 먹는 달래의 경우, 건강한 치아들을 잘 살려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사냥을 하는 야생동물에게 이빨이 없어서 지장이 있을 순 있겠지만, 집에서 사료 먹는 동물에게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연 씨 역시 생각날 때마다 치약으로 이빨을 조금씩 닦아주는 것 이외에 특별한 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지금 관리해야 할 쪽은 노화로 하나둘씩 나타나는 질병의 조짐이라고 합니다. 최근 진행한 건강검진 결과 달래의 심장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합니다. 다만 비대성심근증 등 질병이라고 말하기는 이른 단계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지금은 약을 먹거나, 공격적인 검사를 하기보다 체중을 좀 감량하고, 다음 검진 때 한 번 더 확인하도록 지켜보는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시연 씨 역시 “기침을 조금 하길래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감기약을 먹고 보니 싹 나았다”면서 차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눈에도 백내장이 생겼지만 시야가 흐려지는 데 적응하도록 돕고 있고, 수술은 수의사도 권하지 않고 시연 씨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연 씨가 달래의 질병에 다소 초연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스스로 가진 나름의 원칙 때문입니다.

시연 씨는 달래에 대한 처치를 결정할 때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치료'라고 밝혔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시연 씨는 달래에 대한 처치를 결정할 때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치료'라고 밝혔다. 달래 보호자 이시연 씨 제공


저는 항상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달래가 아프냐, 안 아프냐가 관건이에요. 장애가 있어서 앞을 못 보고 이빨이 없어서 조금 불편한 것보다 안 아프게 지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치료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는 것보다는, 장애가 생겨도 곁에서 돕는 길을 택하겠다는 시연 씨. ‘앞으로 어떻게 달래를 돌봐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도 그는 대단한 것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달래는 저와 평생을 살 거예요. 제 품에서 보낼 겁니다. 그동안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스스로 걷기 힘들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산책을 하겠죠. 먹을 걸 씹기 힘들어지면 떠먹여 줄 거고요.
다만, 달래가 제 곁에 있는 게 만일 아파서 힘겨워한다면.. 그때는 안락사를 선택할지도 모르겠어요. 제 품에서 편히 잠들도록 도와주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에요. 물론, 그때 가서는 또 어떤 욕심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