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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치해도 되나요"… 학폭 피해자의 '마지막 동아줄' 끊어버린 교육부

입력
2023.05.21 19: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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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학폭 피해자 전담기관 '해맑음센터' 폐쇄
건물 노후 손 놓다가 안전 진단 'E등급'에 퇴거 명령
하루아침 갈 곳 잃은 아이들, "가해자 있는 학교로"

19일 수료식이 열린 대전 유성구 '해맑음센터'에서 조정실(오른쪽) 센터장과 학생들이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맑음센터 제공

19일 수료식이 열린 대전 유성구 '해맑음센터'에서 조정실(오른쪽) 센터장과 학생들이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맑음센터 제공

“이틀 전 수료식에선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그저 울 수밖에 없었어요.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요.”

21일 조정실 ‘해맑음센터’ 센터장이 울먹이며 말했다. 2013년 대전 유성구에 문을 연 해맑음센터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만 모여 숙식하고 공부하는 전국 유일의 기숙형 피해자 전담기관이다. 시ㆍ도교육청 위탁을 받아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한다. 이곳에서 자녀의 학교폭력 상처를 치유했다는 한 학부모는 과거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센터는 가족에게 ‘마지막 동아줄’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보금자리였던 해맑음센터는 개교 10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건물이 낡아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교육부가 지난 16일 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재학 중이던 7명의 학생들은 19일 ‘눈물의 수료식’을 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위 센터' '위 스쿨'이 대안?

3월 8일 대전 유성구 해맑음센터 기숙사 입구에 붕괴 위험을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3월 8일 대전 유성구 해맑음센터 기숙사 입구에 붕괴 위험을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교육부는 피해 학생들을 시ㆍ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가정형 ‘위(Wee) 센터’나 ‘위 스쿨’ 등으로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곳엔 학교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위기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있다. 학교폭력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들은 가해 성향의 학생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 입소를 꺼린다. 이번에 해맑음센터에서 퇴거당한 7명 중 2명은 위 센터나 위 스쿨 출신으로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다”며 원래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조 센터장은 “피해 학생들은 가해 학생 눈빛만 봐도 무서워한다”며 “이 아이들을 어떻게 다시 돌려보내느냐”고 가슴을 쳤다.

'노력 중'이라던 대체 부지 선정도 '불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센터 관계자들과 학교폭력 피해자 및 가족들을 더 공분하게 하는 건 교육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다.

해맑음센터는 1963년 지어진 대전 유성구의 폐교 터에 자리 잡은 탓에 열악한 시설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됐다. 기숙사 건물이 지난해 9월 붕괴 위험 진단을 받아 학생들은 교사 관사에 매트리스를 깔고 생활하거나 서고를 기숙사로 급조해 썼다. 그러다 이번에 교사 건물까지 폐쇄가 필요한 ‘E등급’을 받았다.

퇴거 명령은 일방적이었다. 조 센터장에 따르면 센터 측은 교육부에 지속적으로 대체 부지 선정에 대해 문의했고, “노력 중”이란 답을 들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지난달 14일 국회 교육위에 출석해 “경기 안산이 유력 부지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폐쇄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조 센터장이 안산 부지에 대해 재차 교육부에 묻자, "비싼 운영비 때문에 추진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부총리가 국회에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셈이다.

교육부가 언론에 낸 보도참고자료에서 “경북 구미와 경기 양평, 충남 서산 중 대체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센터 입장에선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3개 부지는 기존 센터 건물보다 오래되고 접근성도 안 좋아 이미 교육부에 ‘불가’ 입장을 수차례 밝힌 곳이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수료식에서 한 아이가 ‘우리 중 누가 희생돼야 해결되는 것이냐’고 말해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임시 거처라도 마련해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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