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본사 비판' 가맹점 쫓아낸 bhc...법원 "1억여원 징벌적 배상" 첫 판결

입력
2023.05.22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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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사업법 '징벌적 손해배상' 첫 적용
"냉동육·해바라기유 강매, 광고비 전가"
가맹점주협의회 공정위 신고 빌미로
bhc 본사, 두 차례나 보복성 계약 해지
273일 동안 가맹점에 물류 공급 끊고
가맹점주 괴롭히려 '무차별 소송 폭탄'
법원, bhc에 철퇴 "1억1000만원 배상"


bhc의 대표 메뉴인 뿌링클 치킨. 배우한 기자

bhc의 대표 메뉴인 뿌링클 치킨. 배우한 기자

가맹점주가 본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bhc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징벌적 배상 책임을 인정해 1억여 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2017년 10월 도입된 가맹사업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제37조 2항)는 △가맹본부의 허위⋅과장정보 제공 △부당한 거래거절(갱신거절⋅계약해지 등)로 가맹점 사업자가 손해를 입으면 가맹본부가 손해의 3배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민사13부(부장 최용호)는 bhc 본사를 상대로 bhc 가맹점주협의회장인 진정호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hc 본사는 진씨에게 1억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bhc 본사는 진씨가 본사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계약 해지를 통보했는데, 이를 모두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bhc 본사의 위법행위로 생긴 피해가 크다고 보고, 진씨가 입은 재산상 손실 8,255만 원보다 많은 1억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진씨 측 대리인인 이주한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bhc 본사는 가맹점주들의 생계를 볼모로 각종 갑질을 일삼아 왔다”며 “비록 청구한 일실수입(일해서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보다 인정액이 적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의 첫발을 디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21년 4월 울산 남구 bhc 옥동점에서 진정호 전국가맹점협의회장이 가맹계약 즉시 해지 통보를 받은 뒤 162일 만에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울산=김영훈 기자

2021년 4월 울산 남구 bhc 옥동점에서 진정호 전국가맹점협의회장이 가맹계약 즉시 해지 통보를 받은 뒤 162일 만에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울산=김영훈 기자

가맹사업법에 따르면, 본사는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가맹점주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 가맹점주 입장에선 본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는 닭과 기름 등 원부자재(필수품목) 공급이 끊기면 영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맹사업법이 본사가 일방적으로 물품 공급을 끊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가맹점주협의회 활동으로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는 이유다. 가맹계약 기간 내 계약 해지 조건도 까다롭다. 명백한 계약위반 사실이 있어야 하고, 시정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2개월 이상의 유예기간도 필요하다.

2021년 4월 울산 남구 bhc 옥동점에서 진정호 전국가맹점협의회장이 주방 쪽 판매관리시스템(POS)을 켜고 있다. 당시에는 영업정지로 POS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울산=김영훈 기자

2021년 4월 울산 남구 bhc 옥동점에서 진정호 전국가맹점협의회장이 주방 쪽 판매관리시스템(POS)을 켜고 있다. 당시에는 영업정지로 POS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울산=김영훈 기자

bhc 본사는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고 두 차례나 진씨와의 가맹계약을 끊었다. 진씨는 2019년 4월 11일 bhc 가맹점협의회 이름으로 “bhc 본사가 신선육이 아닌, 품질이 좋지 않은 꽁꽁 언 닭(냉동육)을 공급한다” “시중에 파는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비싸게 강매한다” “신선육 가격에 광고비를 몰래 포함시켜 가맹점주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며 본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bhc 본사는 다음 날 “허위사실을 유포해 가맹본부 명성이나 신용을 훼손했다”며 진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물품 공급이 끊긴 진씨는 그해 4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105일간 영업을 하지 못했다. bhc 본사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진씨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로 형사고소했고, 10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진씨는 2019년 6월 bhc 본사의 가맹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지위보전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bhc 본사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다. 가맹계약이 1년 단위로 갱신된다는 점을 악용해 2020년 1월부터는 계약이 만료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법원은 “본사 주장대로 (판결 시점에) 가맹 계약이 종결될 것이기에 소송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bhc 본사와 진씨의 계약은 2020년 1월 만료되지 않았다. 이후 bhc는 '뜬금 없이' 2020년 10월 30일 진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해 2021년 4월 22일까지 168일간 일방적으로 물품 공급을 끊었다.

재판부는 두 번의 계약 해지가 모두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①가맹점주협의회가 제기한 냉동육,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광고비 전가 관련 의혹들이 근거가 없다고 보기 어렵고 ②가맹본부의 명성이나 신용도 훼손되지 않았고 ③가맹점주협의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가맹사업법 제37조 2항에 따라, 1차 계약해지에 대해선 4,000만 원, 2차 계약해지에 대해선 7,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bhc 본사는 그동안 힘없는 가맹점주를 상대로 '소송 폭탄'을 퍼부으며 ‘가맹점주 옥죄기’에 앞장서 왔다. 진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는 데 비해 과징금이나 배상금이 미미하다 보니 본사가 망설임 없이 갑질을 하는 것 같다”며 “본사 입장에선 몇십억 소송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는 전부나 다름없던 생업이 끊겨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법원과 공정위는 bhc 본사의 '가맹점주 재갈물리기'에 제동을 걸고 있다. 공정위는 2021년 5월 본사의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와 가맹점주협의회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bhc 본사에 과징금 5억 원을 부과했다. 본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패했다. bhc 본사가 진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형사사건은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됐다. 본사가 진씨를 상대로 제기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으로 없던 일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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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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