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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호 교수의 심장 건강] 비대면 진료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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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면 현행 감염병예방법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불법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1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의 형식으로 지속한다고 한다.
비대면 진료 찬성자들은 의료 접근성 확보와 수년간의 경험상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반면 대부분이 의사인 신중론자들은 환자 상태 파악이 불완전해 발생할 수 있는 환자 안전과 의료사고 발생 위험성이나 책임 소재 불명확성 등을 들어 코로나19처럼 특수하고 제한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진찰’의 전통적인 개념은 환자 증세와 병력을 묻는 문진(問診), 눈으로 살펴보는 시진(視診), 손으로 만져보는 촉진(觸診), 몸을 두드려 반응을 보는 타진(打診),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판단하는 청진(聽診)을 말한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는 전화기 화면으로 얼굴만 보고 진찰을 대신해야 하니 촉진과 청진은 아예 불가능하다. 첨단 기술 시대에 무슨 촉진이나 청진이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도 많이 발생하고 서양인은 55세가 되면 3명 중 1명이 앓게 되는 심방세동은 진맥(診脈)만으로 80% 이상 진단할 수 있다. 세계적 진료 지침에서도 심방세동의 스크린으로 진맥을 권할 정도이니 우리는 전화선에 실을 매달아 손목을 진맥해야 할 모양이다.
TED ‘의사의 손길’이란 영상을 소개한다. 의식이 혼미해 응급실로 들어온 여성 환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더니 온몸에 퍼진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환자는 최근 2년 동안 서너 군데 병원에서 진찰한 적이 있으나 어느 의사도 유방을 촉진하지 않았다. 여성 가슴을 손으로 진찰하는 일이 꺼려 그랬으려니 추측하지만 제대로 진찰했다면 유방암을 놓치진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지만 괜찮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유방암 환자도 문제가 드러나기까지 2년이 걸렸고 제대로 된 진찰을 받지 못한 결과가 이 같은 비극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보완하지 않으면 지금의 비대면 진료는 ‘깜깜이 진료’가 된다. 정확한 환자 상태 파악이 어려우니 약 처방전 리필에 그치기 쉽다. 초진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관상만 보고 진단 처방까지 하라니 의사더러 점쟁이 흉내를 내라는 것과 같다.
비대면 진료가 자리 잡으려면 꼭 필요한 게 있다. 환자ㆍ의사 사이의 원격 환자모니터링이다. 실시간으로 환자의 바이털 사인(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하고 심전도를 모니터하고 필요하면 원격 청진까지 할 수 있다면 의사나 환자 모두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의료법 34조는 의사 사이에서만 원격으로 의료 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게 되어 있다. 비대면 진료에서 정작 필요한 병원 밖 의사ㆍ환자 간 원격 환자 모니터링은 법적 근거가 없으니 안타깝다.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환자ㆍ의사 관계에 있어 ‘진찰’이 갖는 의미는 상징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이다. 진료 현장에서 이미 진찰이 소홀해졌지만 준비되지 않은 비대면 진료는 그나마 남아 있는 진찰의 의미를 송두리째 뿌리 뽑을 것이다.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하는가 아닌가는 오히려 사소하다. 인간 환자와 인간 의사가 진찰을 통해 생기는 작더라도 따뜻한 교류가 끊어지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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