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약 4천 종의 식물이 자랍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풀, 꽃, 나무 이름들에 얽힌 사연과 기록, 연구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엮을 계획입니다.
5월이 되면 아카시아꽃이 사방에 많이 핀다. 아침저녁 출퇴근이나 산책길 어디에서나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 추억 속의 아카시아꽃은 공감각적으로 회상된다. 동요 '과수원길'과 모 제과회사의 아카시아껌 광고노래를 떠올리면 상큼하고 달큼한 잔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비가 온 직후 신작로 흙냄새와 섞여 진동하던 아카시아꽃 향기에 대한 기억은 고향을 향한 향수에 젖게 한다. 요즘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카시아나무 잎을 따서 말린 다음 학교에 내던 일도 많았다. 어떤 가축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녹사료 숙제라고 했는데 아마 겨울철 토끼 먹이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잎을 훑어 따면서 손가락 크기만 한 차갑고 물컹한 초록색 콩박각시 애벌레를 만져서 몸서리치던 기억과 새로 난 가시에 찔린 따끔한 느낌도 생생하다.
박완서는 그녀의 자전소설에서 비리고 들척지근한 아카시아꽃 맛에 헛구역질하며 고향에서 먹었던 시큼한 싱아 맛을 회상한다. 나는 아카시아꽃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요즘 사람들은 튀김이나 장조림, 술도 담가 먹는가 보다.
아카시아나무의 정식 이름은 아까시나무다. '국가표준식물목록' 누리집에서 이름을 붙인 근거로 제시한 '조선산림식물도설(1943)'엔 '아가시나무', '우리나라식물명감(1949)'엔 '개아까시나무'로 기록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이 둘을 절충하여 붙인 이름인 듯하다. 사실 호주와 열대 아시아 등에 아카시아(Acacia)라는 속명을 가진 식물이 따로 자라고 있으니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아까시나무의 학명인 로비니아 슈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의 종명에 붙은 'pseudo'는 가짜 혹은 비슷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접두사이니 진짜는 아니지만 아카시아와 유사한 특징을 가졌다는 의미다. 속명인 Robinia는 1601년 이 식물을 북아메리카로부터 유럽으로 처음 도입한 프랑스 왕립식물원 식물학자 Jean Robin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많은 온라인 자료나 기록 중 맨 처음 유럽으로 가져온 스페인 대령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학부시절 식물생태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뿌리를 길게 내어 다른 식물들이 사는 곳까지 빠르게 번진다고 하시며 아까시나무를 깡패나무라고 하신 기억이 난다. 자연생태를 지역 자생종으로만 보존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으로 그리 말씀하신 것 같다. 어린 줄기에 가시가 많고, 목재로도 쓸모가 없을 듯하여 나 역시 최근까지 동조해 왔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까시나무는 1900년도 초반 우리나라에 들여왔고, 100년 넘게 환경에 잘 적응하여 자생식물 수준으로 자라고 있다. 한국전쟁 후 황폐해진 산림을 녹화하고, 절개지나 황무지의 산사태를 막기 위해 많이 심은 것이니 잘 자라주어 고맙게 생각해야 할 나무이다. 우려했던 환경에 대한 위해는 기록된 것이 거의 없고, 관리가 되는 수준으로 자라고 있다. 요즘엔 경관뿐만 아니라 밀원식물로도 중요해지고 있어 군락지를 보호하고 새로 심자는 움직임도 많다. 최근 기후변화로 봄꽃이 일찍 피거나 짧은 기간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해가 많아졌다. 초여름까지 꽃이 귀한 시기에 꿀샘이 발달한 아까시꽃은 꿀벌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듯하다.
볕이 잘 드는 낮은 산자락에 온통 아파트와 집을 지어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까시나무가 아닌 인간이 아닌가. 땅을 기름지게 하고,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우리가 심은 아까시나무가 요즘처럼 향기를 내며 경치를 이루고 밀원식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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