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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통일벼 '사태'가 남긴 교훈

입력
2023.05.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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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앙코르와트 인근 도로변에 설치된 '한-캄보디아 우정의 도로' ODA 사업 기념비. 태극기는 떨어져 나갔고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에 쌓인 채 방치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앙코르와트 인근 도로변에 설치된 '한-캄보디아 우정의 도로' ODA 사업 기념비. 태극기는 떨어져 나갔고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에 쌓인 채 방치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부처합동으로 열린 공적개발원조(ODA) 전략회의에서는 통일벼 보급사업 계획 하나가 발표됐다. 개발도상국 지원사업으로 으레 등장해 무난하게 ‘통과’하는 아이템이었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당초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섬에서 먹을 쌀이 부족하다고 하니 소출량이 많은 통일벼를 보급해 도움을 주면서 국위를 선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지와 화상으로 연결된 영상전화 한 통에 없던 일이 됐다.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영토이긴 하되, 역사적으로는 이슬람 국가인 오만의 영향권에 있어서 통일벼 같은 단립종(자포니카형)이 아닌 장립종(인디카형)을 먹기 때문에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또 같은 자리에선 한국의 우수한 정보기술(IT)과 선진 농업기술을 결합해 스마트팜을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발표됐지만 현지에서 전기가 부족하고 이동통신 기반이 취약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역시 없던 일이 됐다. 회의에 참석한 지자체 공무원 A씨는 "중앙부처 고위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되는 ODA 사업 계획이 허술해도 너무 허술했다"며 "많은 혈세가 이런 식으로 버려지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며 혀를 찼다.

해외로 나가는 돈이 아깝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ODA 사업뿐만이 아니다. 243개 지방자치단체와 그 수만큼 많은 지방의회가 교류, 협력, 연수 등의 목적으로 시행하는 국외 출장도 그중 하나다. 수백 명의 단체장들이 직원들을 이끌고 자매도시 등 우호협력도시를 찾고 수천 명의 지방의회 의원들이 연수 목적으로 매년 비행기에 오르지만 ‘과연 저들의 출장에 세금을 태울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대목은 몇 년 전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서 목격한 일본의 원조사업과 공공외교를 떠올리게 한다. 부처와 지방정부별로 소규모 원조 프로그램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중앙 부처는 물론 지방정부와의 협업체계가 탄탄하게 구축돼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항, 대교 등 사업이 종료된 곳에는 한국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해당하는 ‘JAICA’로 통일된 기념판이 눈에 띄도록 설치됐고 출장 온 일본 공무원들은 그곳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수혜국 국민들은 두고두고 일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국은 세계 ODA에 있어서 주목받는 국가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예산의 절반가량을 국제사회의 원조에 의존하던 수혜국에서 2009년 ODA 공여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듬해인 2010년 약 1조6,000억 원이던 ODA 예산을 지난해 3조6,000억 원에 이어 올해 4조8,000억 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먹지 않을 벼를 심어주거나 전기도 없는 곳에 스마트팜 설치를 시도한 예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여기에 A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중앙정부가 세계 85개국 1,350개 도시와 1,817건의 자매우호 협력을 체결하고 있는 국내 지자체와 협력하면 된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손발만 맞춘다면 ‘탄자니아 잔지바르 통일벼’ 같은 일은 생길 수 없고 개발원조와 공공외교의 가성비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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