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김밥에는 마약이 없지만

입력
2023.05.19 04:30
25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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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의 일이다. 지인이 자신의 어린 자녀가 '마약김밥', '마약옥수수'가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약이 그렇게 맛있는 거야? 나도 먹어 보고 싶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음식명 앞에 '마약'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김밥, 옥수수, 치킨, 떡볶이'와 같이 평소에 자주 먹는 음식에 '마약'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음식뿐 아니라 '마약베개', '마약이불', '마약방석', '마약바지'와 같이 침구류, 의류에 '마약' 표현을 넣어 홍보하는 것도 종종 보인다. 이러한 표현은 마약이 지니는 '중독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중독성 있는 맛', '중독성 있는 편안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6년 전에는 '마약'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식품이나 제품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요즘 뉴스에서 연일 마약 관련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특히 10~30대 마약 사범이 최근 3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를 마약 청정국이라 하던 것도 다 옛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안다. '마약김밥'에 마약이 없고 '마약베개'가 마약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표현을 규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이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의 이름에 '마약'이라는 표현을 붙여 자주 접하게 된다면 마약의 유해성이나 위험성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게 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특허청도 '마약'이 들어간 상표를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마약'이라는 표현의 사용에 대해 더욱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이윤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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