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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노부부의 '행복 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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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80대 후반의 노부부가 거주하는 아파트를 수리해 준 일이 있었다. 1980년대에 서울 강남에 지어진 아파트라서 매매 시세는 상당한 아파트였다. 노부부는 자녀들이 마련해 준 사우나 회원권을 이용하는 것을 즐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지시면서 집 안에서도 물에 몸을 담그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았던 내부 인테리어를 조금 만져 보기로 한 것이었다.
덕분에 오래된 아파트이면서도 평당 단가는 억대를 넘는 아파트를 방문하게 됐다. 입구에서 눈에 띈 점은 주차장이 없다는 점. 주민들은 이중 삼중 주차로 지내고 있었다. 양방형 4차선이 1차선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중간 틈새로 곡예운전을 해야 했는데 주민들은 익숙해 보였다. 적정한 위치에 주차를 하고 공사를 위한 점검을 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하고 싶어 하진 않으셨고 부분적으로 욕실 2곳 중 1곳에 욕조 설치를 해드리고 변기와 수전 및 수납장을 바꿔드리는 수준의 수선이었다.
적정가의 자재를 사용해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제안드렸지만 자녀분들의 마음은 이왕이면 더 좋은 스펙의 자재들을 써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개선할 것이 아니라면 크게 티가 날 부분도 아닌지라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드리고 실용적인 인테리어로 마감해드렸다.
새로 세팅된 화장실과 욕실은 새것이니까 좋기도 하겠지만 수압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원하시던 욕조가 생겨서 따뜻한 물에 늘 몸을 담그고자 했던 바람이 해결되어서 만족해하셨다. 어르신들께서 미소 지으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본업이 아닌 일인데 지인인 건축주의 요청으로 해 준 작은 수고였다.
서울 시내에는 이런 환경의 주거지역이 즐비하다. 수년 전 서울 한 구의 노후건물에 대한 조사에서 무려 3,000건에 달하는 노후건물이 있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노후되는 것이 맞지만 이를 바라보고 관리하는 관점은 조금 다른 결이 있다.
건물 가치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건축물 자체가 고급이거나 잘 지은 집이어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지역이냐와 주변 인프라 및 앞으로의 호재가 있는지 여부가 건물 가치를 결정한다. 교통 인프라가 새로 생긴다거나, 거대 시설이 들어온다거나, 공원 계획이 생긴다든지의 호재 이슈에 따라서 집값이 오르고 내린다. 이런 현상은 한국 주식시장과 똑같다. 실체는 없는데 소문만 무성해도 주가가 오른다. 이런 것을 우린 거품이라고 표현한다.
주차장도 없고 수도관이 낡아 녹물이 나와도 재건축 이슈가 있고 강남3구이라는 이름만으로 억대 이상의 가치로 매매되는 현상과 이를 부추기는 투자 컨설턴트들이 주도권을 향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거권이라는 말이 있다. 초기 문명사회 집의 근원적 기능은 셸터(Shelter)이자 안식처였다. 하지만 지금의 집과 부동산은 투자처이며 경제적 기반이다. 집과 삶에 대한 질적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잣대가 없는 한 우린 계속 녹슬고 비좁은 공간에서 통장잔고를 계산하고 부의 축적을 꿈꾸며 사는 것을 낙(樂)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돈이 많으면 기뻐한다. 그게 2023년도 우리의 자화상인 것 같다. 89세 어르신의 미소가 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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