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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 조작·뒷돈 상장' 판쳐도… 끄떡없는 가상자산 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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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FTX 사건이 있었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제스트' 전모 대표에게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가상자산 구입 명목으로 입금된 고객 돈을 빼돌려 직원 급여 등 거래소 운영비로 쓴 혐의다. 지난해 파산한 미국 FTX거래소 역시 고객 예치금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코인제스트가 처음부터 고객 돈을 썼던 건 아니다. 코인제스트는 한때 국내 최상위 거래소였다. 자본금 10억 원 이하 거래소들이 설립될 때 40억 원을 유치했고, 해킹 문제가 심각할 때 보안성과 안정성을 강조해 투자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았다. 2018년 6월 오픈 당시 사전예약 가입자는 15만 명에 달했다. 거래소 운영 두 달 만에 하루 거래량 1,830억 원을 기록하며 업비트나 빗썸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거래소 개장 당시 시스템 개발 비용으로 자본금 40억 원을 모두 소진했고 2018년 말에는 5,000만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도 무산됐다.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가상자산 침체기)가 찾아오면서 거래량이 줄어들자 수입은 감소했다. 여기에 세금 35억 원까지 부과되면서 경영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 대표는 결국 고객 예치금에 손을 댔다. 가상자산 거래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고객 돈을 시스템 유지관리 비용과 직원 급여, 세금 납부 등에 쓴 것이다.
당시 코인제스트는 고객들의 원화 출금을 정지하면서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피해자 974명의 원화 예치금 68억여 원을 법인 운영비로 사용했다. 재판부는 "고객 예치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보관·관리해야 할 임무가 있음에도 다수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코인제스트 사례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저지른 위법 행위를 놓고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상장피 △시세조작 묵인·관여 △고객 예치금 무단 사용 △자체 발행 코인 사기 등 따져볼 문제는 수두룩하다. 거래소를 향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국내 대형 거래소는 '절대 갑'의 위치에서 처벌을 비껴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장(증권의 경우 한국거래소 심사)부터 예치·예탁(예탁결제원), 매매중개(증권회사), 청산·결제(한국거래소), 전산시스템(코스콤), 분석·평가(신용평가사)까지 이해상충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16일 거래소에 몸담았던 내부 직원과 코인 발행업체 전 고위 관계자, 빗썸에서 발행한 코인(BXA) 투자 피해자에게서 국내 거래소의 문제점에 대해 다각도로 들어봤다. 진단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거래소는 기형적으로 비대한데 이에 걸맞은 도덕성과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면 실제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는 매수·매도가 발생하지 않아요. 거래소의 고객 계정에 비트코인 포인트가 증가해서 산 것처럼 보이는 거죠. 입금된 원화도 포인트로 변경되고 거래에 따라 감소하고 증가해요. 장부상 거래니까 거래소가 마음만 먹으면 돈과 코인 포인트를 찍어낼 수 있는 거죠. 중소형 거래소 대부분이 그렇게 했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오랫 동안 근무했던 김거래(가명)씨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거래소 내부에서 코인 거래가 일어나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되지 않는다. 거래소 내부의 고객 계정에 포인트로 변환돼 거래되기 때문이다. 거래소와 외부자 간 거래, 즉 ①거래소-거래소 ②거래소-개인 ③(거래소 밖의) 개인-개인 거래일 때 실제 코인은 대상자 지갑으로 이동하면서 기록된다. 거래소 입장에선 장부상 거래가 훨씬 효율적이기에 이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객이 개인 지갑으로 코인을 옮기거나 돈을 출금할 때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기만 하면 된다.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 거래 취지에서 벗어나 다시 '중앙화'된 형태의 거래로 돌아간 것이다.
문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거래소가 '양심'을 저버릴 때다. 실제로 거래소가 장부를 조작하고, 조작된 장부로 거래에 참여해 처벌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가상자산 거래소 뉴비트가 대표적이다. 뉴비트 대표 박모씨는 2021년 4월 항소심에서 사기 및 사전자기록 등 위작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아버지와 여자친구 등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거래소 발행 코인인 '뉴비'가 237만9,206개가 있는 것처럼 전산을 조작했고, 시세를 조작·상승시킨 다음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26억여 원의 부당수익을 올렸다. 뉴비는 블록체인 기술도 적용되지 않는 코인이었다.
코인 발행업체에서 고위 임원으로 근무했던 이중앙(가명)씨는 한국일보에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에 반발해 비트코인이 등장했고, 구글과 아마존 같은 대형 IT기업의 착취에 반발해 투명성과 개인 소유권을 중시하는 웹 3.0이 등장했다"며 "하지만 중앙화된 가상자산 거래소가 등장하면서 모든 문제가 꼬여 버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거래소 관계자들이 코인 발행업자나 유동성 공급자(LP)와 짜고 개인적으로 수억 원을 착복했다는 얘기는 너무 많다"며 "뒷돈 상장 역시 거래소 임직원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돈만 바라보면서 생긴 부패 행위"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1등 업체로 '넘사벽' 평가를 받는 업비트도 거래소 개장 초기에 회원계정(ID=8번)을 만들고 1,221억 원가량의 원화와 코인을 허위로 입력한 의혹이 제기돼 2018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업비트가 이 계정으로 비트코인 등 35개 코인 거래에 참여해 4조6,417억 원가량의 자전거래 등을 일으키고 254조 원가량의 허수 주문을 제출해 1조8,817억 원 상당의 '사기적 거래'를 했다고 봤다. 이를 통해 거래 수수료 등 1,491억7,761만 원을 편취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1·2심에서 업비트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계정은 원화·코인을 충전한 게 아니라 '한도값 설정'을 해둔 것이며, 이 계정은 코인 거래를 위해 기술적으로 필요한 장치라는 업비트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가장매매를 통해 거래량을 늘려 고객을 유인한 혐의에 대해서도 코인 정보제공 업체에 거래량 정보를 보내지 않아 잠재적 고객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ID=8번 계정 간 매매로 비트코인 거래량이 일부 증가했지만, 이것만으론 비트코인 거래가 성황을 이뤘다고 착오를 일으키기엔 부족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업비트 경영진은 무죄 판단을 받았지만, 이런 의심 거래가 반복돼도 이를 감시할 기관이나 규제가 없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2021년 3월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가상자산 거래소를 검사할 수 있지만, 자금세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허위 계정을 만들고 원화 등을 충전해 거래에 이용하는 행위는 형법으로 다스리고 있어 FIU는 검사 권한이 없다"며 "현재로선 수사기관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낸스 코인이 100원에 상장해 1만 원 이상까지 올랐어요. 빗썸이 자체 코인(BXA)을 개발해 상장시킨대요. 코인판에 있으면서 이런 확실한 소식을 듣고 투자하지 않을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BXA 투자자 피해 모임 대표 나피해(가명)씨는 2018년 말 BXA 코인 12억 원어치를 구입했다.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빗썸을 인수해 BXA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할 것"이란 얘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나씨의 권유로 지인들이 투자한 돈까지 합치면 120억여 원에 이른다. 나씨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김 회장이 거짓말을 할 것으론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빗썸도 BXA 상장을 예고했다. 빗썸이 2019년 1월 BXA 상장기념 사전 이벤트를 열자 장외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BXA는 빗썸에 상장되지 않았다. 인수대금 5,400억 원을 모으는 데 실패하면서 김 회장의 빗썸 인수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나씨는 김 회장과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 빗썸 임직원 등 4명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을 무혐의 송치했다. "김 회장이 계약금을 납부했기에 빗썸 인수를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앞서 이들에 대한 다른 고소 사건도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김병건 회장이 이정훈 전 의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만 수사기관에서 받아들여졌다. 검찰은 BXA 코인을 빗썸에 상장한 뒤 코인 판매 대금으로 빗썸홀딩스 지분 매수 자금을 확보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이 전 의장의 약속을 사기라고 봤다. 그러나 이 역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양측이 작성한 투자 합의서에 구속력이 없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고, BXA 코인 상장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후 BXA의 빗썸 상장 시도는 계속 있었지만, 금감원이 반대하면서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가 자체 코인을 발행하고 상장시키면 심판이 경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판단 때문이다. 김거래씨도 "거래소가 코인을 발행해 거래시키면 모든 내밀한 상황을 보며 투자할 수 있기에 일반 투자자들과 정보력 측면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형 거래소들은 형사처벌을 잘 피해갔다. 이중앙씨는 지난 2월부터 한국일보와 4차례 가진 만남에서 “업비트는 대형 로펌들을 두루 선임해 방어하고 있다"며 “작은 거래소가 했던 나쁜 짓을 큰 거래소는 도덕적이라서 안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무법지대 코인 리포트' 인터랙티브 기사로 한눈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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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delisted_coins/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1>'사라진 코인' 심층 보고서
<2>코인 대통령과 180개 사기극
<3>대마불사 거래소의 이면
<4>코인 생태계 리부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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