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올려야 하는 건 알지만… 에어컨을 안 켤 수도 없어요"

입력
2023.05.15 19:00
수정
2023.05.15 19:15
3면

전기료 인상 발표에 시민·기업 부담 커져
"요금 인상 불가피하다지만..."

15일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관리인이 전기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15일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관리인이 전기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추가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


15일 전기·가스 요금 인상안이 발표되자 산업계에선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 해소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면서도 업계에 미칠 영향을 크게 걱정했다.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들은 경기 둔화에 수출 실적마저 부진한 데다 생산 원가와 직결되는 요금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전의 33조 적자, 가스공사 11조 미수금 등을 고려할 때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적 요금 인상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인상으로도 이들 공기업의 적자가 완전히 해소되는 게 아니기에 추가 인상을 우려한 것이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혁신팀장은 "근본적으로 원가에 기반한 전기요금 가격체계 정착이 시급하다"며 "용도별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알리고 한전이 독점하는 전력판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부담을 덜 세밀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인상이 우리 수출 업계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며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의 세심하고 정교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상의도 "탄소중립, 에너지 수급 불안에 따라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과 소비 절감이 중요한 만큼 요금 조정 외에 수요 관리, 에너지 시설 투자 확대 등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전기요금만 1,500억 원 추가 부담 전망


윤석열(오른쪽 두 번째) 대통령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택=서재훈 기자

윤석열(오른쪽 두 번째) 대통령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택=서재훈 기자


산업계에서는 전기사용 비중이 높은 기간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전체 산업에 원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산업용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반도체 업계는 유례없이 나쁜 실적을 거둔 상황에 또 다른 짐을 떠안게 됐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기업인 삼성전자(1만8,412 GWh)는 이번 인상으로 약 1,5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 사용량 2위 기업 SK하이닉스(9,209GWh)도 약 700억 원을 더 내야 한다. 더불어 최첨단 공정 고도화를 위한 연구와 생산량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라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고로(용광로)에서 전기로로 생산 방식을 바꾸고 있는 철강업계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은 반갑지 않다. 국내 최대 전기로 기업 현대제철은 지난해 전력·연료비로 2조4,296억 원을 지출했고, 동국제강은 지난해 전력비로 2,806억 원을 썼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은 생산시설에서 나오는 부생가스 등으로 자체 전력을 만들어 부족한 전기를 채운다"면서도 "철강 가격이 높아지면 원재료 가격이 올라 연쇄 물가 인상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도 "공장 가동에 전기요금 비중이 커 원가가 올라가는 부담이 생긴다"고 했고, 자동차 업계는 "철강, 전장제품 등 부품, 원자잿값이 올라 결국 업계 전반으로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소기업 "순 매출 줄어 인력 줄일 수밖에..."


지난 1월 서울 시내 전통시장 분식집에 공공요금·재룟값 인상으로 인한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1월 서울 시내 전통시장 분식집에 공공요금·재룟값 인상으로 인한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전기를 주된 연료로 공장을 돌리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상훈 대한광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전력 사용비를 납품 대금에 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납품대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작은 회사들은 경영에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당장 다음 달(6월) 비싼 성수기 요금이 적용되기에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으로선 고지서 받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조시영 한국동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여름 휴가철이 있어도 공장은 계속 돌려야 한다"며 "결국 순 매출은 줄고 인력까지 줄여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시름이 깊었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장은 "5월인데도 벌써부터 에어컨을 안 켤 수 없다"며 "소상공인들에게 요금 감면 등 직접 지원을 하는 게 아니니 결국 음룟값을 올려 최소한 이익을 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여름 냉방용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고 있다. 생후 200일 된 아기를 키우는 이모(32)씨는 "아이 키우는 집에선 비싸도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며 "한전 적자 때문에 전기료를 올려야 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막상 감당하려니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직장인 황모(35)씨는 "내일부터 30도 더위가 예상된다는데 올해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전기료가 상승하면 물가도 뛸 텐데 월급 빼고 모두 오른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인현우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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