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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건 고칠 권리, 나에게 달라"... '수리권' 확대되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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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라드 폴리스 미국 콜로라도 주지사는 '농업 장비 수리에 대한 소비자 권리법'(Consumer Right To Repair Agricultural Equipment)에 서명했다. 주의회를 통과한 이 법은 농기계 제조사들이 수리에 필요한 매뉴얼 등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콜로라도 농업인들은 트랙터나 콤바인이 고장 나면 제조사 사람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조사들은 기기 소프트웨어에 소비자가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두고, 자신들만 고칠 수 있도록 했다. 수리 대기 기간이 수주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법 통과 덕분에 내년부터 콜로라도 농민들은 자기 장비를 직접 고칠 수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농업인을 위한 수리권' 보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의 기기를 수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2012년 매사추세츠주가 자동차에서 이 권리를 처음 인정한 후, 미국에서 꾸준히 확대돼 왔다. 이달 기준 콜로라도처럼 소비자의 수리를 제조업체가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한 주는 미국 50개 주 중 45곳이다. 이미 수리권은 미국 대다수 주가 인정하는 대세가 됐다.
법안으로 강제되다 보니 수리권 보장에 부정적이었던 제조사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선 소비자들에게 꽁꽁 감춰뒀던 수리 매뉴얼, 도구, 부품, 소프트웨어 등에 대한 접근 권한을 제한 없이 제공하는 기업이 계속 늘고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도 각각 2021년과 지난해 직접 수리 제도를 선보였다. 미국에서 '수리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누구나 수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수리하는 경우라도 제조사로부터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제조사가 공인한 수리점에서 수리한 것만 정품으로 인정하는 관행은 미국 대다수 주에서 불법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서 수리권이 확산되는 이유는 경제와 환경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공익연구그룹(PIRG)은 제품을 교체하는 대신 수리해 계속 쓰면 가구당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이 연간 330달러라고 추산했다.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 수명이 1년씩 연장되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년 210만 톤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연간 210만 톤은 1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규모다.
반면 한국에선 아직 수리권이란 개념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비자의 요구가 거의 없다 보니 국회도 소극적이다. 제21대 국회에서 수리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법안은 2021년과 지난해, 두 건이 발의됐는데 제대로 논의 한 번 이뤄지지 못한 채 관련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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