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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한 번에 목숨을 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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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계속 죽는다. 학교와 교회, 영화관에서 혹은 취미로 들른 댄스학원, 그것도 아니라면 주말을 맞아 선물로 받은 옷을 바꾸러 갔던 대형 쇼핑몰에서. 장소뿐 아니라 원인도 각양각색이다. 이웃집에 굴러간 공을 주우려다가,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가, 주차장을 잘못 찾아서 들어갔다가, “늦은 시간이니 조용히 해달라”고 옆집에 부탁했다가도 사망했다. 이 모든 죽음의 가해자는 그때마다 달랐지만, 흉기는 같았다. 바로 ‘총’이다.
국제부에서 매일 전 세계 외신을 둘러보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15일에도 어김없었다. 이날 애리조나주 유마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는 각각 7명과 5명이 총에 맞았다. 루이빌은 불과 지난달에도 해고당한 직원이 은행에 총기를 난사해 범인을 포함한 5명이 숨졌던 지역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205건(미국 총기 폭력 아카이브·GVA)의 관련 사건이 일어났다. 총격범을 제외하고 4인 이상이 죽은 사례만 따진 기준이니 오인 등 총기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외출 한 번에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다. 미국에서 두려움은 일상이 됐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세 아이의 어머니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옷’을 기억해 둔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혹여나 총격 사건이 터지면 시신을 식별하기 위해서다. 텍사스의 한 여성은 총격이 일어나면 자신은 막내를, 남편은 둘째 아이를 감싸기로 미리 약속해 뒀다. 아홉 살이 된 큰아이는 혼자 달려서 도망치기로 했다. 그는 그렇기에 지난 6일 일어난 텍사스주 댈러스 참사에서 숨지는 순간까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던 한인 부부의 이야기를 유독 머릿속에서 떨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국은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금지된 나라라 이런 사건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상관없다고 팔짱을 낀 채 관망하면 그만일까. 최근 댈러스 참사는 피해자가 미국 국적의 한국계 가족이라 드물게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보스턴대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 살면서 본인 혹은 지인이 총격으로 죽거나 다칠 가능성은 99.9%였다. 물론 이는 미국인 기준이지만, 이번 사고에서 그랬듯이 1만㎞나 떨어진 곳에 사는 ‘나’의 아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모든 형태의 폭력을 반대하고, 또 맞서야 하는 이유다.
박기남 텍사스주 포트워스 한인회장은 댈러스 참사로 숨진 한인 가족의 장례식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총기 관련 법·제도 문제가 해결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 내 총기 규제에 무관심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깨달음은 한인 커뮤니티에 그치지 않는다. 갈수록 인종차별뿐 아니라 다양한 동기, 혹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총기 난사가 일어나고 있어 이제 나라 전체가 들여다보며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총기폭력 연구자는 “이제 국가가 유색인종 공동체들이 지난 수세기간 맡았던 ‘탐색’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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