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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동안 무조건 아침 6시!”… 천안 배구 조기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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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축구가 아닌, ‘조기 배구회’라고?
새벽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3일 오전 6시. 충남 천안시 동서 배구장엔 강렬한 스파이크 소리와 운동화 마찰음 그리고 기합 소리로 가득했다. 이른 시간 적막을 깬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천안 배구 조기회 회원들. 배구공을 치고 받고, 코트를 구르며 체육관을 배구 열기로 가득 채웠다.
이들은 “설과 추석 당일을 제외한 ‘1년 363일’이 배구하는 날”이라고 했다. 처음 창단된 1988년 10월 12일부터 무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변함없이 ‘무조건 오전 6시부터’였다. 창단 멤버 7인 중 지금은 유일하게 남은 강태명(72)씨는 “비슷한 장소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끼리 ‘운동 삼아 배구나 해 보자’며 천안국민학교(초등학교) 흙바닥 운동장에서 ‘동네 배구’를 시작했다”면서 “당시 흔한 명칭이었던 ‘백마 조기회’로 시작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회원들도 바뀌면서 ‘천안 배구 조기회’가 된 것”이라고 짧지 않은 역사를 담담하게 전했다.
7명이었던 회원은 어느새 40명으로 늘었다. “가입하고 싶다”는 문의도 많지만 원활한 동호회 운영을 위해 ‘인원 제한’을 한 게 이 정도다. 98년생 막내부터 최연장자인 박경철(75)씨까지 ‘삼대’가 매일 아침 함께 땀을 흘린다. 라호섭(67)씨는 아침 산책을 하다 체육관 기합 소리에 끌려 덜컥 배구를 시작했고,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를 보다 아버지를 따라 배구에 입문한 신용섭-신유경 부녀 회원도 있다. 이들 부녀는 벌써 10년째 함께 뛰고 있다. 직업도 대학생부터 자영업자, 교사, 종교인까지 천차만별이다.
각인각색 40명의 못 말리는 배구 사랑은 대단하다. 배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내 무덤에 배구공을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전임 회장도 있었다고 한다. 프로배구 시즌엔 천안 유관순체육관 단체 관람도 하며 단합력을 다진다. 제28대 회장 김기수(61)씨는 “(경기) 안성에서 매일 새벽길을 달려 천안까지 온다”면서 “가까운 친인척도 이렇게 매일 만나진 않는다. 자주 만나 함께 땀 흘리니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라고 끈끈함을 과시했다.
오랜 역사와 꾸준한 활동으로 소문이 나면서 2016년에는 TV 예능프로그램(우리동네 예체능)에도 출연했다. 재능이나 물품 등 ‘실질적인 도움’도 동호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총무 김형주(45)씨는 “선수용 나무 벤치, 조명, 전기 배선, 냉난방 시설 등 체육관 곳곳에 회원들의 손때가 묻어 있다”면서 “또 연장자 형님들이 ‘매일 아침 배구’라는 보약을 드셔서 그런지 모임 운영을 위해 보약값을 쾌척해 주신다”라며 웃었다.
건강을 되찾은 이들도 있다. 김기수 회장의 경우 2013년 교통사고로 어깨와 골반을 크게 다쳤지만 배구를 통해 재활에 성공했다. 김 회장은 “처음엔 걷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지금은 가벼운 점프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라고 배구 예찬론을 폈다. 라호섭씨도 2007년 전립샘암 판정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라씨는 “당시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비관적이었는데 좋은 친구들과 꾸준히 운동을 하니 건강이 완전히 돌아왔다”고 말했다. 물론 전위 공격수는 잦은 수직 점프와 어깨 스윙으로 관절에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위 공격수와 후위 수비수 위치를 적절히 배분하면 체력적으로 부담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절정의 전력을 자랑했던 2018년에는 전국 대회 3위에 입상했다. 다음 달에도 전국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겨룬다. 하지만 천안 배구 조기회의 목표는 대회 입상이나 성적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모임 내 선수 출신은 단 2명뿐이고 대부분 아마추어다. 황정하(56)씨는 “잘하는 배구보다 꾸준히 즐기는 게 목표”라며 “회원들의 배구 열정으로 35년을 이어왔다. 우리 후배들이 그리고 그 후배들이 앞으로 반세기를 넘어 ‘100년 클럽’으로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쯤이면 동호회 사무실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동네 배구 박물관’이 돼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단 5년 뒤 4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 거예요. 꼭 참석해서 우리 또 한 번 취재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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