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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대통령이 수익 보장, 안 사면 바보" 미끼에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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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61)씨는 믿지 않았다. 심모(58)씨로부터 2005년 상가 분양사기를 당했는데, 또 당할 순 없었다. 부동산업자였던 심씨는 2018년 4월 금과 연동되는 더마이더스터치골드(TMTG) 코인을 개발했다며 김씨에게 투자를 제안했지만, 김씨는 거절했다. 김씨는 2005년 강남 신축 빌딩 상가에 15억 원을 투자하면 30억 원과 상가 분양권까지 준다는 심씨의 제안에 돈을 내놨다가 3억2,000만 원을 날렸다. 김씨는 심씨 등 시행사를 상대로 고소도 해봤지만, 경찰은 기망 행위가 없다며 무혐의 송치했다.
김씨는 한때 강남에서 술집을 운영해 돈을 꽤 벌었다. 새벽까지 일하는 게 힘들어 가게를 정리했더니 수중에 20억여 원이 들어왔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심씨에게 돈을 떼인 김씨는 2008년 전북 전주에 땅 투자를 했다가 또 사기를 당했다. 남은 돈 대부분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김씨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단칸방에 살았다.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심씨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김씨는 TMTG가 중국계 가상자산 거래소(IDCM)에 상장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심씨는 2018년 8월 TMTG가 300원에 상장돼 며칠 만에 1,800원까지 올랐다며 가격 차트를 보여줬다. 김씨는 첫 제안 가격인 10원 안팎에 사지 않은 게 후회됐다. 심씨는 코인 한 개당 1,000원을 제안했지만, 부동산 투자 손실을 이유로 500원까지 깎았다. 그렇게 김씨는 TMTG 코인 6만 개(3,000만 원)를 구입했다.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심씨 사무실에 갔을 때 믿음은 더 견고해졌다. 수억 원의 현금과 수표가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긴 코인(TMTG)과 거래되는 모습을 보니 실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1,800원까지 올랐던 TMTG는 이후 급격히 하락해 0.7원까지 떨어졌다. 2018년 11월 빗썸에 상장됐지만, 가격은 30원대에 그쳤다. 김씨는 심씨의 권유로 지인들 돈까지 끌어모아 30~50원대에 추가 매수했다. 한때 90원까지 올랐지만, 원금 500원을 감안하면 한참 못 미쳤다. TMTG는 지난해 6월 사업 현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빗썸에서 상장폐지됐다. 2020년 5월 코인원에도 상장됐지만, 120원 '상장빔'(상장하자마자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현상)을 쏘더니 지난해 7월부터 0.1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김씨가 지인들까지 끌어들여 투자한 금액은 4억여 원에 달하지만, 지금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는 현재 충북 청주의 건설현장 모델하우스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당 7만 원 일용직이다. 2019년엔 심부전증으로 응급실에 갔지만 수술비 부담 때문에 수술도 못 했다. 지난달 24일 한국일보와 만난 김씨는 "SK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신논현 사무실까지 와서 무슨 계약을 한 걸 직접 봤다. 그땐 TMTG가 오케이캐시백과 연동되는 줄 알았다"며 "아버지 연금도 털고 지인 돈까지 끌어와 수억 원을 투자했는데 쪽박을 차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코인 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피해 사실을 고백할 때 주저한다. 사기였다는 걸 깨닫고 신기루를 좇았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특히 코인 투자에 가족과 지인까지 끌어들였다면 마음고생은 몇 배로 커진다. 한국일보는 일주일 동안 강남 일대에서 '코인 대통령'이라 불렸던 심씨에게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28명을 상대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심씨가 판매한 코인은 TMTG를 비롯해 럭스바이오(LBXC), 톰파이낸스(TOM) 등 10여 가지로 대부분 국내 주요 거래소에 상장됐던 코인들이다.
심씨는 지난해 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지난 2월 항소심에선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사건 판결문엔 고소인 한 명의 피해액 18억 원만 명시돼 있지만, 전국적인 다단계 피해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 주장이다. 피해자들은 심씨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코인에 투자한 이유는 분명하다. 수익이 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심씨도 이런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피해자 가운데 46.4%는 '시세차익을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투자했다고 한다. 심씨는 특히 연말에 TMTG를 4달러까지 올리겠다며 시세조작을 의미하는 '마켓메이킹(MM)'을 하겠다는 언급도 서슴지 않았다. 심씨는 실제로 싱가포르의 한 회사와 MM계약을 맺었다. 이는 판결문에도 명시돼 있다. 검찰은 코인 시세조작 행위를 범죄로 봤지만, 재판부는 MM의 적법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TMTG가 금 연동 코인이란 점도 피해자들을 현혹할 만한 포인트였다. 실제로 금 연동 사업은 추진되는 것 같았다. 2018년 5월에는 한국금거래소와 골드바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20년 9월엔 금 교환 플랫폼을 만들었다. 금 교환 테스트도 진행됐다. 지인을 포함해 10억 원을 투자했다는 한 피해자는 "TMTG가 한국금거래소와 계약한 걸 보고 진짜인가 싶었다"며 "강남 바닥에서 TMTG 투자 안 하면 바보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 연동의 실체가 불투명했다는 점이다. 법원도 금 연동은 기망에 가깝다고 봤다. △금 교환이 너무 복잡한 점 △플랫폼 완성 시점(로드맵상 2018년 10월)이 2년이나 늦어진 점 △실제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심씨가 교환할 금이나 담보를 갖고 있지 않은 점도 투자자들을 속인 근거로 봤다.
심씨는 TMTG가 SK 오케이캐시백과 롯데 엘포인트와 연동될 거라고 홍보했다. 마카오의 세계 최대 도박 정킷 운영사 선시티(태양성)가 TMTG에 5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실체가 없다고 봤다. 법원은 △SK플래닛과(오케이캐시백)의 계약서는 단순 홍보 계약서에 불과하고 △롯데멤버스 직원과의 만남이 엘포인트 연동 추진을 의미하는 건 아니며 △선시티 부회장과 찍은 사진은 업무협약을 위한 촬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시중에 코인이 갑자기 많이 풀리면 코인 가격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코인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어 가격 결정에는 유통량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발행업자들은 코인을 판매할 때 타임록(Time Lock·일정 시점이 지나야 거래 가능한 기능)을 걸어 놓고 백서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힌다. 심씨도 거래소 상장 전 TMTG에 타임록을 걸고 판매했다. 심씨도 거래소 상장 전 유통 물량을 통제하려고 TMTG에 타임록을 걸고 판매했다. 2018년 9월 2일부터 10개월 동안 31일마다 전체 판매 코인의 10%씩 유통시킨다는 조건이었다.
문제는 타임록 고지를 제대로 안 하거나 속였을 경우다. 피해자 46.4%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14.3%는 아예 고지 자체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엔 타임록이 없다가 막상 TMTG를 사고 나니 타임록이 있다고 들은 피해자도 있다. 한 피해자는 "수차례 타임록이 없는지 확인하고 TMTG 코인 500만 원어치를 샀지만, 사고 나니 타임록이 불가피하다는 통보를 들었다"며 "적절한 시점에 돈을 빼서 큰 손실은 보지 않았지만, 타임록을 속인 건 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코인 보유자 입장에선 타임록이 풀릴 때마다 팔게 되면 수익을 보지 않을까. 실제로 일부 수익을 보기도 한다. 심씨는 TMTG로 수익을 봤다는 투자자 3명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수익은 크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 설명이다. 타임록이 풀릴 때쯤이면 거래소 가격은 이미 하락해 있고, 심씨가 록이 풀릴 때쯤 목표 가격을 제시하고 그 금액까지 버티라고 종용하기 때문이다. 코인을 팔면 시중에 물량이 많아지고 가격은 더 하락할 테니 자신이 가격을 끌어올릴 때까지 기다리라는 게 심씨의 논리였다.
TMTG 피해자들의 특징은 심씨로부터 여러 코인을 구입했다는 점이다. 심씨는 한 코인이 물려 있으면 손해 복구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다른 코인을 추천했다. 한 사람당 구입한 코인은 평균 4개나 됐다. TMTG가 17개로 가장 많았고, 럭스바이오(LBXC) 15개, 트라이엄프엑스(TRIX) 13개, 메티스(MTS)와 소바(SOBA)가 10개, 톰파이낸스(TOM), 톰2(TOM2), 크립토뱅크(CBANK)가 각각 7개씩이다. 총 13개 코인을 샀다는 김씨는 "손해를 복구해야 하니 초조감과 불안감이 커졌고, 심씨를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씨가 '으쌰으쌰'하며 카카오톡방을 운영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인들과 함께 투자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피해자 10명 중 7명은 주변인까지 끌어들였다.
한때 가수로 활동한 심씨는 유명 연예인들과의 친분도 과시했다. 법원에 제출된 심씨와 동업자 문모씨의 녹취록(2019년 2월 23일)에 따르면, 유명 연예인들도 80억 원 정도를 투자했다는 대화 내용이 나온다. 전체 맥락은 유명 연예인도 TMTG 투자로 손실을 보고 있음에도 심씨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취지였다. 다른 녹취록(2022년 9월 27일)에서는 문씨가 실제 유명 연예인과 통화도 했다. 심씨의 강남 사무실에 빗썸 실소유주로 알려진 사업가 강종현씨가 여러 차례 다녀간 걸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문씨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피해자들은 왜 억울하다면서도 심씨를 고소하지 않았을까. 고소하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났다는 대답이 절반을 넘었다. 고소해도 처벌을 피할 것 같았다는 응답이 21.4%, 잘못 투자한 책임도 있어서 피해금액보다 변호사 비용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응답이 7.1%였다.
김씨는 왜 고소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심씨한테 부동산 투자 사기를 당하고 고소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며 "사기꾼은 돈 벌어서 좋은 변호사 써서 빠져나가고, 피해 본 사람은 변호사 못 써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다"고 말했다.
'무법지대 코인 리포트' 인터랙티브 기사로 한눈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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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delisted_coins/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1>'사라진 코인' 심층 보고서
<2>코인 대통령과 180개 사기극
<3>대마불사 거래소의 이면
<4>코인 생태계 리부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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