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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투자한 김치코인,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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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는 사람은 다 코인판으로 왔어요. 여기서 돈 못 벌면 바보니까요.”
“(코인판은) 무법지대니까. 학교(교도소) 가기 전에 돈 바짝 벌고 가자는 사채업자랑 다단계업자들이 모여들었죠. 교도소에서 마켓메이킹(MM)하는 직원을 면회 오라고 해서 지시하는 코인업자도 있어요.”
2017년 비트코인 열풍 후 국내에 다양한 가상자산이 등장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유통되고 있는 가상자산은 625종으로, 시가총액은 19조 원에 달한다. 한때 국내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자산) 시장에선 15분마다 새로운 코인이 한 개씩 생길 정도로 거래가 활발했지만, ‘코인판은 사기판’이라는 오명은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코인 발행업체(재단) 임직원 3인을 심층 인터뷰해 코인의 발행부터 상장, MM 전 과정에서 손쉽게 벌어지는 사기성 행위를 살펴봤다. 코인 발행업체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대표이사 등은 입을 모아 “마음만 먹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 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코인시장”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코인 대다수는 실제론 코인이 아니라 ‘토큰’에 가깝다. 토큰은 자체 메인넷(블록체인 생태계)이 없어 다른 블록체인에 의존해 존재하는 암호화폐를 말한다. 네이버가 코인이라면 네이버 블로그는 토큰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코인 제작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10분이면 코인을 원하는 만큼 발행할 수 있다. 시중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는 ERC-20(프로그램) 표준코드에 원하는 코인 이름과 발행 개수를 입력하면 끝이다.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 프로젝트에 맞게 코드를 수정하고 이후 준비돼 있는 지갑에 생성된 코인을 넣으면 된다.
문제는 코인 프로젝트 상당수가 ‘스캠(scam)’ 구조라는 것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해서 투자금을 유치하는 행위가 스캠이다. 알트코인 중 다수는 코인 개발에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그럴듯한 프로젝트와 연동시킨 뒤 투자자를 모집하는 스캠 코인에 가깝다고 한다. 수년간 코인 발행업체에서 일했던 A씨는 “발행업체 경영진 등이 저렴하게 토큰을 제작한 뒤, 그럴듯하게 홈페이지와 백서를 만들어 일반 투자자에게 비싸게 파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투자자들이 코인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게 되면 어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드와 광고주·연예인을 이어주는 사업 플랫폼에서 사용된다거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공기 청정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등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속 가능성이 없는 코인들이 대표적이다.
A씨는 “뭔가 있어 보이려고 외국인을 사서 임직원으로 내세우고, 외국에서 채굴하고 있다고 하나 대부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며 “특정 기업과 MOU를 맺었다고 홍보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MOU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블록체인 마케팅업체에 문의해보니, 코인 제작 비용은 대략 250만 원부터 시작했다. 영세 거래소 상장을 약속한 마케팅업체는 1억 원을 요구했다. 업체에선 코인 프로젝트 내용이 담긴 백서(white paper)와 홈페이지, 플랫폼 제작을 완료해준다고 홍보했다. 업체 관계자는 “백서는 이미 기본 페이지가 구성돼 있어 토큰 이름과 심벌, 발행량, 프로젝트 주제만 생각해오면 된다”며 “법률 자문과 오딧(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코드 보안 감사) 심사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요새는 상장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5대 거래소에 상장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코인 발행업체들은 백서와 홈페이지, 코인과 연동되는 플랫폼이 완성되면 이를 들고 거래소로 향한다. 신규 코인은 내재적 가치나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는 가격이 곧 코인의 실제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거래소 상장 절차는 ‘깜깜이’나 다름없다. 거래소에선 상장심사위원회에서 코인 발행업체가 제출한 백서와 계획 등을 심사하는데, 구체적인 절차와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내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로 구성된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의 상장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빗썸과 코인원에 상장시켰던 코인 발행업체 대표 B씨는 “코인 거래 수수료(지난해 평균 매매 수수료율 0.16%)가 거래소의 주된 수입원이기 때문에 상장하려고 오는 업체들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거래소 상장이 코인 발행업체의 목표가 되다 보니, 상장 브로커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지난 3월 코인 상장 대가로 코인원 담당 임직원에게 9억3,000만 원을 전달한 브로커 고모씨, 브로커들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코인원 상장 담당 이사, 10억4,000만 원을 받은 코인원 상장팀장을 구속기소했다. 브로커 고모씨가 상장에 관여한 코인은 29개 이상으로 알려졌다.
코인원 측은 “상장을 대가로 뒷돈(상장피)을 받지 않는다. 개인적 일탈 행위”라고 선을 그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코인원은 상장하려는 코인 발행업체를 상대로 특정 브로커 업체(MRC)를 지정해 마케팅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마케팅 계약'을 내걸고 상장피를 받는 식이었다.
마케팅 계약서에는 4주 동안 매주 하게 될 홍보 계획이 적혀 있었고, 비용은 2,500만 원 정도였다. 코인 발행업체는 이와 별도로 브로커 업체에 3,000만 원을 추가로 건넸고, 코인원 상장 담당 직원에게도 상장할 코인 1,000만 원어치를 지급해야 했다. B씨는 “명목은 마케팅 계약이지만, 계약서 내용 중에 지켜진 건 하나도 없었다”며 “지금도 상장하려면 업비트는 15억 원, 코인원은 5억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업계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해당 거래소에선 이를 부인하고 있다.
코인이 상장되면 ‘마켓 메이킹’을 뜻하는 MM은 필수다. MM은 거래량과 가격을 끌어올리는 인위적 행위를 뜻하며, LP(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라고도 부른다. 코인은 주식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크고 유동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MM이 수시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전거래를 통한 거래량 부풀리기, 인위적 가격 조작이 손쉽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MM업자는 '운전수'로 불린다. 코인 발행업체가 MM 브로커에게 코인과 현금을 주면, 이들은 ‘봇’ 프로그램으로 코인을 특정 가격에서 사고팔며 개미투자자들을 유인한다. 자전거래로 거래량을 늘리고, 목표지점까지 코인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코인 발행업체와 거래소, MM업체 사이의 암묵적 동의도 형성돼 있다. 발행업체 CFO인 C씨는 “특정인들에게 록업(매도 제한)을 걸어놓고, 본인들은 록업이 없는 물량을 털어내는 구조로 운영한다”며 “거래소는 거래 봇을 통해 실제론 거래되지 않는 코인이 거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제한 없이 빠르게 거래할 수 있는 슈퍼봇이 거래소의 핵심 시스템”이라고 귀띔했다. 코인 발행업체 직원 A씨도 “코인 시장이 형성된 초창기에는 거래소에서 법인 계정(VIP 계정)을 줘서 수수료 없이 자전거래를 하며 거래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해줬다”며 “차트를 봤을 때,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상승하면 일단 MM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MM업자들은 리딩팀과 매집팀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시세조종 물량을 받아주는 개인투자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첫 번째 팀이 코인을 10원에 산 뒤 12원에 팔고, 두 번째 팀이 이 가격에 받아 투자한 뒤 15원에 털면 가격이 점차 오르는 그래프가 만들어진다. 거래량과 가격이 함께 올라가면 다른 투자자들도 관심을 갖게 돼 거래량이 많아지고, 발행업체와 MM은 고가에 보유 물량을 매도할 수 있다.
A씨는 “리딩팀들이 상장 예정이라며 프라이빗 세일(특정 투자자에게만 하는 비공개 판매)을 통해 투자자를 모으고, 이 과정에 다단계 조직들이 많이 붙어 '물량 설거지'를 한다”며 “폰지사기처럼 계속 메꿔야 하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회전목마를 돌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MM업자들이 계정 2개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거래소 및 발행업체와 계약된 계정 외에도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명 계정을 운영해 같은 수법으로 돈을 빼내는 것이다. 코인 발행업체 대표 B씨는 “MM업자는 해킹 등으로 갑자기 가격이 무너졌다고 발행업체를 속이고, 뒤로는 차명 계정으로 돈을 챙긴다”며 “코인 발행부터 판매 과정까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는 게 '김치코인'의 현실”이라며 말했다.
코인 발행업체 CFO C씨도 “모든 거래를 투명화하자는 게 코인과 블록체인 네트워크 사업의 목적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정보 비대칭성이 코인판을 사기판으로 만들었다”며 씁쓸해했다.
'무법지대 코인 리포트' 인터랙티브 기사로 한눈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delisted_coins/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1>'사라진 코인' 심층 보고서
<2>코인 대통령과 180개 사기극
<3>대마불사 거래소의 이면
<4>코인 생태계 리부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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