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신뢰를 받으려고 한다면

입력
2023.05.14 17:5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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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 교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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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료실에서 자주 접하는 주제는 매일 직장과 집에서 만나는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장님이나 팀장님, 혹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나면 그들과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은 ‘이젠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서늘함일 때가 많다. 그들의 행동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믿는 것일까?

인턴 의사를 채용할 때 스트레스ㆍ우울 증상ㆍ성격을 검사하는 곳이 많다. 이때 주로 그 사람의 개방성ㆍ성실성ㆍ외향성ㆍ우호성ㆍ예민성을 평가한다. 내 동료가 될 것이라면 좀 열린 마음이면 좋겠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한 일을 좋아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은 일에 발을 걸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동료나 고객들과도 잘 어울리는 외향성이 있으면 좋겠고, 포용력 있게 주변을 돕는 우호성도 넉넉하길 바란다. 일에 성실함은 물론이고 걱정이 많거나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섯 번째 성격 요인으로 ‘정직과 겸손’을 평가하기도 한다. 타인과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것. 일 처리에 공정하며 주변을 착취하기보다 협력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누군가를 믿고 따르게 하려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인테그리티(integrity)’가 그것이다. 진실성ㆍ청렴성ㆍ완결성ㆍ도덕성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일본 막부(幕府) 장군의 삶을 그린 소설에 ‘부하들은 대장을 존경하는 것 같지만 실은 계속 대장의 약점을 찾아내려 한다. 녹봉으로 충성을 사려 하지 말고 감동하고 감탄하게 만들어 존경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리더라면 작은 손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너그러움과 대의에 충실한 삶을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기가 엄마를 신뢰하는 이유는 조건 없는 무제한적 사랑을 주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 탓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 아이가 성장하고 나면 정산을 요구하는 부모도 많지만 말이다.

신뢰의 양은 평소에 나눠준 이익의 총합이라고도 한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은 조직의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모두 사업가이고, 그들의 충성심도 비즈니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주변 모두에게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 목표와 의리에만 의존하지 말고 부하들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모든 일은 결국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행합일(知行 合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입으로는 고결한 헌신을 이야기하면서 세속적 욕망에 목말라하거나, 본인은 놀러 다니면서 자녀와 부하에게만 성실함을 주문하는 리더는 존경하기 힘들 것이다.

평등교육정책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은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돈 벌지 못할 곳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부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리더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뭔가 부적절감과 죄책감, 수치심을 느낄 것 같지만, 그리 착하지 않은 일부는 작은 이익에 눈을 감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중적 삶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인간은 특히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경향이 있으니까.

리더가 똑똑하고 열정에 가득 찬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직하지 않거나 앞뒤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인재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것이고, 그 조직은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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