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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내용을 쉽게 쓸 수 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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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예전보다 글쓰기에서 가독성이 강조되는 듯하다. 잘 읽히는 글이 늘 좋을까? 듣기 쉬운 경음악이나 이지리스닝이 딱 그만큼의 쓸모가 있듯이 읽기 쉬운 글도 쓸모가 딱 그만큼이다. 물론 글 자체가 조악하면 안 읽힐 수도 있겠으나, 어떤 글은 필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훌륭하다. 어려워야 할 글이 겉보기에 너무 쉬우면 도리어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다 이해한 것처럼 쓱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가독성 중시 경향은 영어권의 영향도 크다. 대중서뿐 아니라 학술 논문도 그렇다. 아직은 독자보다 저자 중심인 독일어, 프랑스어 등 유럽 주요 언어와 견주어 봐도, 영어는 가독성에 더욱 비중을 둔다. 그런 특징이 생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문화를 고맥락/저맥락으로 흔히들 나누는데 주어와 타동사의 목적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표적인 저맥락 언어가 영어다. 반면 한국어처럼 화자가 주어를 안 써도 청자에게는 이해되는 고맥락 언어도 많다. 언어와 문화의 맥락 고저 관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꽤 이어진다. 저맥락 언어를 쓰는 영어권과 북유럽 등지가 저맥락, 남유럽과 동유럽은 비교적 고맥락, 중동과 남아시아, 동아시아는 고맥락 문화권이다.
가독성이 높다는 것은 저맥락 언어인 영어처럼 저자가 독자에게 더 쉽게 또렷이 풀어 준다는 뜻인데 모호한 맥락을 싹 없애면 언뜻 좋아는 보이지만 늘 그렇진 않다. 적당해야 최선이다. 극단적인 맥락 제거는 도리어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초래한다.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지 말라고 설명서에 명시해야 된다면 거북이나 코끼리는? 상대방이 "은행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대개 주로 가는 동네 은행에서 입출금을 비롯한 볼일을 본다는 걸로 이해된다. 그런데 정확히 어느 은행에 몇 시에 가서 누구를 만나 무슨 볼일을 보고 언제 돌아오겠으며 도중에 딴 일이 생길 가능성은 없는지 얘기하지 않는다고 따진다면 어떨까? 이렇듯 시시콜콜한 수준까지 내려오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영어의 철자와 발음 간극 탓에 영어권은 난독증이 많은 편이다. 읽기 어려운 언어라는 뜻인데 그래서 글을 좀 더 풀어 주는 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딴 유럽 언어와 비교한 것이라 비유럽 언어와 견주면 좀 다르지만 난독증과 철자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영어권은 작가가 많아서 독자도 많고 그만큼 독자 수준도 다양하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영어 글도 가독성이 썩 높지 않았다. 18세기와 21세기 영어가 본질적인 차이는 없기에 어휘나 문법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어차피 독서 행위가 귀족적이라서 저자가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고 읽으므로 작가가 되기도 쉬워져 작가가 독자에게 맞춘다. 문자 언어의 위세가 떨어진 것이다.
가독성을 중시하면 글쓰기가 독백보다는 대화에 가까워지고 입말의 요소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서두에 짚고 넘어갔듯이 어려워야 되는 글도 있는데 잘 풀어서 알아듣게 만들기란 무척 어렵다. 말솜씨 훌륭한 사람의 설명을 들을 땐 알아듣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게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한 번 더 소화를 거쳐야 한다. 강의나 강연이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 말하기와 글쓰기, 듣기와 읽기는 서로 다르다. 문자 언어의 위상이 달라졌으니 글쓰기에 말하기의 요소를 들여 웬만하면 쉽게 써도 좋겠지만 둘이 다름을 염두에 두고 가독성의 효용을 따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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