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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기간 늘리면, 국민연금 노후보장 유럽 수준 가능하다

입력
2023.05.15 04:30
수정
2023.05.25 11:04
25면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연금개혁 : <5> 국민연금과 노후소득보장

프랑스 남부 소도시 벙쓰(Vence) 시내에서 이 지역 노인들이 한가롭게 만찬을 즐기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지역 노인들은 높은 공적연금 덕분에 은퇴 후에도 소득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

프랑스 남부 소도시 벙쓰(Vence) 시내에서 이 지역 노인들이 한가롭게 만찬을 즐기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지역 노인들은 높은 공적연금 덕분에 은퇴 후에도 소득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


OECD에서 노인소득, 연금 비중 가장 낮은 한국
재정안정만큼 중요한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지급률보다 유럽 방식 가입기간 확충 노력 필요

연금개혁 논의 시작의 계기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때문이며, 그래서 보험료 인상은 연금개혁의 핵심의제가 되었다. 그런데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핵심의제가 되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노후소득보장 강화이다. 안정된 재정이 연금제도가 지속하기 위한 조건이라면, 적정한 노후소득보장은 연금의 존재 목적이다. 존재 목적을 상실한 제도는 존속할 이유가 없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그래픽=송정근기자

'① 시각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연금 노후소득보장 수준을 보여준다. 막대그래프 전체 길이(괄호 안 수치)는 국민 평균소득이 100일 때, 노인소득의 상대 규모이다. OECD 평균은 87.9%인데, 한국은 65.8%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막대그래프 맨 왼쪽의 황색은 연금소득 규모를 나타낸다. OECD 평균은 56.5%이다. 한국은 17.1%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막연히 우리 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취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토록 빈약할 줄 몰랐을 것이다.

한편, 노후소득보장 강화 필요성에 동의하는 독자라도, 이번 개혁에서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주저할 수 있다.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금 지출 증가는 재정 지속가능성에 불리하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지출이 증가하느냐에 따라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달라진다. 그래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되 가급적 재정 지속가능성을 저해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연금급여 수준을 평가할 때는 소득대체율 지표를 사용한다. 급여액이 근로시기 소득의 몇 %인지를 나타내는데, '지급률×가입기간'으로 계산된다. 지급률은 가입기간 1년당 소득대체율을 의미한다. 지급률이 1%라면, 20년 가입 시 소득대체율은 20%이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그래픽=송정근기자

연금급여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소득대체율을 높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급률을 높여야 할까 가입기간을 늘려야 할까. 정답은 가입기간이다. 우리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은 가입기간이 짧은 탓이다. '② 시각물'에는 유럽 국가의 공적연금 기여율과 기여기간이 제시되어 있다. 유럽 8개국은 가입 연령대 인구의 80%가 보험료를 납입하는데 우리는 60%이다. 유럽 8개국의 보험료 납입기간은 36년이 넘는데, 우리는 18년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수급권자가 많고 급여액이 작다. 우리의 보험료 납입자 비율과 납입기간을 유럽 8개국 평균에 맞추면, '①시각물'에서 우리의 연금소득 규모는 OECD 평균만큼 높아진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그래픽=송정근기자

소득지원정책의 혜택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국민연금은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 국민연금은 낸 것의 두 배 이상 받는다. 연금 급여 중 낸 것을 초과하는 부분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미수급권자는 아예 이 혜택을 못 누리며, 혜택의 크기는 가입 기간에 비례한다. 그런데 수급률과 가입기간은 고소득층일수록 높고 길다. '③ 시각물'에서 소득 상위 20%의 가입기간은 소득 하위 20% 가입기간의 두 배이다. 수급률도 두 배 이상 차이 난다. 성별 격차도 크다. 남성의 가입기간과 수급률은 여성의 두 배이다. 정작 노후 소득이 불안할 저소득층 다수는 수급권이 없으니 혜택도 없다. 가뜩이나 여성 노인 빈곤이 남성 노인 빈곤보다 심각한데, 국민연금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참으로 기이한 제도다. 우리처럼 소득과 성별에 따라 가입률과 가입기간 차이가 심한 경우는 달리 찾기 어렵다.

왜 우리는 다른 국가보다 미가입자가 많고 가입기간이 짧을까. 다른 나라 국민이 우리보다 특별히 노후 대비에 관심이 많기 때문은 아니다.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정책이 잘 구비되어 있는 덕분이다. 일단 우리보다 가입연령 상한이 5년 이상 길다. 연금 수급 직전 해까지 일하고 보험료를 납부한다. 또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연금 가입기간을 인정해 주는 정책이 관대하다. 아이 낳으면 한 명당 3년을 인정해 준다. 또, 군 복무기간은 100% 인정해 준다. 가족 돌봄의 경우도 인정해 준다. 모두 우리는 없거나 부족한 정책이다. 가입기간 확충은 가장 효과적인 노후소득보장 강화책이며 국민연금을 명실공히 '국민을 위한 연금'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안이다.

글 싣는 순서-연금개혁

<1> 왜 연금개혁인가? (윤석명)
<2> 연금개혁 국제동향 (윤석명)
<3> 노후소득보장의 적정성 (오건호)
<4> 다층적 노후소득체계 (양재진)
<5> 국민연금과 노후소득보장 (김태일)
<6> 퇴직연금 (박종원)
<7> 국민연금기금 효율적 운용 (박영석)
<8> 3대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윤석명)
<9> 노동·교육개혁과의 연계 (이근면)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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