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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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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2003년 까르푸에서 벌어진 노동자 부당해고 사태를 배경으로 한 최규석 작가의 웹툰·드라마 '송곳'.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에게 주인공 이수인은 이렇게 묻는다.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이에 구고신은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이 대사가 문득 떠오른 건 최근 들어 부쩍 들려오는 온갖 사기 사건 때문이다. 지난해 '빌라왕 사망'으로 촉발된 전세 사기는 이미 서울을 넘어 인천·화성 등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인천시가 파악한 인천의 피해 규모만도 2,969호. 이 중 반 이상이 이미 경매에 넘어갔다. 지금도 피해 지역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까닭에 그 끝이 어디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8개 종목이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며 나흘 새 8조 원 넘는 돈이 증발한 SG증권발 주가조작 파문도 이제 시작인 건 마찬가지다. 주가조작 세력은 신규 투자자들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의 주식을 비싸게 사가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기업인·의사 등 1,000명 정도가 돈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한 세력이 수백, 수천 채를 보유하면서 전세 사기를 계획하고, 금융당국에 등록되지도 않은 투자자문업체가 8개나 되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주가조작을 벌일 수 있었을까. 아니, 그전에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걸까?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할 만하니까.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게리 베커 교수는 "범죄는 범죄로 얻게 될 기대이익이 지불해야 할 기대비용보다 클 때 발생한다"며 이러한 범죄 행위는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걸리지 않으면 좋은 거고, 설령 걸려서 처벌받더라도 남는 장사라면 범죄 유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만일 100억 원을 횡령·은닉하고 징역 10년을 살면 연봉이 10억 원.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도덕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 세상엔 그 연봉 10억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경제 범죄에 유독 미온적인 시선은 그릇된 탐욕에 더욱 불을 댕긴다. 영화 '작전'에서 조폭 두목 황종구가 주가조작 및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연행되는 와중에도 경찰을 향해 "나 엄연한 경제사범이야"라고 거들먹거리는 장면은 그런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여기에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이상한 신중론이 곁들여진다. 그렇게 매년 30만 건 이상의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검사 시절 쓴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에서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며 이들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 희박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테라·루나 코인 사기로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을 미국에서 처벌받게 하자고 아우성인 건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거액의 코인 사기 행각을 벌인 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코인 업체 대표에게 총 4조5,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9년 650억 달러에 달하는 폰지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은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감옥에서 죽었다.
며칠 전 수도권에서 전세 사기를 벌인 일당이 징역 5~8년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들은 '깡통전세' 수법으로 31명으로부터 70억 원가량을 편취하고서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에 화가 나더라도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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