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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맞서는 한일 공조

입력
2023.05.10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고려를 미워한 소동파. 성균관대박물관

고려를 미워한 소동파. 성균관대박물관

우리에게 중국요리 동파육(東坡肉)의 창시자로 유명한 동파거사 소식(蘇軾·1037~1101). 당송팔대가로 불릴 만큼 뛰어난 문장가로도 칭송받지만, 그는 고려를 미워했다. 고려를 ‘맥족의 도적’이라는 뜻의 맥적(貊賊)이라고 칭하며 “맥적이 우리에게 조공하는 건 터럭만큼 이익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다. 고려가 요청한 서책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상소를 송나라 조정에 올렸다.

□고려에 대한 소식의 삐딱한 시선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송과 요가 중원을 놓고 겨루는 사이 힘의 균형추가 되어버린 고려가 삼각관계를 배경으로 송에 큰 이득을 취했다. 일부 고려 사신들은 돌아가는 길에 물건을 강탈하거나, 조공품의 10배에 달하는 하사품을 송에서 챙겼고, 게다가 송 황제의 하사품을 개봉과 항주 등 중국 현지에서 금과 은으로 바꿔서 가져갔다. 군사 기밀인 지도, 송 황실에만 있는 희귀 도서들을 달라고 떼를 쓰는 등 안하무인 행태도 보여줬다. 그런데도 당시 국제관계상 송은 고려를 어쩌지 못하고 달래야만 했다.

□국제관계는 냉정하다. 오랜 외교관계가 일순간 뒤바뀔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이 자유중국을 버리고 중국과 수교하고, 반도체 패권 때문에 대만을 놓고 중국과 다시 대립하는 게 우선 그렇다. 게다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TSMC를 미국이 파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대규모 반도체 수요업체가 예비물량의 일부를 TSMC 대신 삼성에 발주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고려와 송의 관계처럼 국력의 절대치와는 상관없이 협상력의 저울추가 기우는 쪽이 이득을 챙기게 된다.

□신냉전 구도에서 우리 선택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면 우리와 입장 비슷한 파트너가 필요한데, 발상을 조금만 바꾸면 일본이 그 대상이다. 공급망 재편에 대한 미국의 막무가내 압박, 반도체·배터리 산업에서의 한일 간 소재·부품·장비 연관성, 대외 희토류 의존성 등에서 비슷한 처지다. 난방을 위해 겨울마다 막대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처지도 같다. 국민감정은 여전히 멀지만, 미국에 맞서 한일 공조로 챙길 실리는 결코 작지 않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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