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스타트업엔 유난히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이 있습니다. 강점을 가지려는 분야에 최고 책임자를 두기 때문입니다. C레벨을 보면 스타트업의 지향점도 한 눈에 알 수 있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⑪구현서 클래스101 CTO
기술로 먹고사는 스타트업에게 최고기술책임자(CTO·Chief Technology Officer)는 최고경영자(CEO)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다. 애플의 사례를 봐도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각각 비즈니스와 기술 개발을 분담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니어 개발자 중에서는 비즈니스와 기술 개발 양쪽 영역을 넘나드는 인물이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의 구현서 CTO다. 한때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개발자로 활동했고, 그 이후엔 미국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회사) 반열에 오른 머신러닝 기반 광고 솔루션 기업 몰로코(Moloco)의 한국지사 대표를 역임했다.
그래서 구 CTO는 자기 역할을 단순히 기술의 전문가, 기술개발 조직의 수장으로만 보지 않는다. 때로는 스타트업의 최대 자산인 '인재'를 데려오는 채용 담당자이고, 때로는 수십여 명의 개발자들을 이끄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가 2021년 7월 클래스101에 합류한 뒤, 과거 직장 동료였던 아마존 출신 동료 4명을 끌어들인 일화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유명하다. 구 CTO를 만나, 그가 정의하는 CTO의 역할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미국 아마존, 몰로코 등 '기술적 도전'이 컸던 곳에서 일하셨는데요. 온라인 강의 플랫폼 기업인 클래스101으로 자리를 옮기신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비즈니스가 기술에 선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었죠. 바로 전 직장이었던 몰로코는 이와 반대였죠. '광고'라는 원래 존재하는 비즈니스를 기술로 혁신하려 했습니다. 클래스101은 비즈니스가 기술에 선행하는 경우입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크리에이터는 클래스101 플랫폼에 강의를 개설한 사람을 의미)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고, 저는 이 비즈니스를 위해 기술적 혁신을 만들고 싶습니다."
-2015년 출발한 클래스101의 서비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CTO로 합류했습니다. 만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클래스101에는 어떤 기술적 변화가 있었습니까?
"스타트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일하죠. 그런데 스타트업이 융성하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제품을 더 빠르게 시장에 내보내고, 더 많은 고객의 반응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게 해야 했고, 이를 가능케 하는 조직의 변화도 필요했습니다."
-몰로코와 클래스101을 비교하면 B2B(기업 대 기업) 회사와 B2C(기업 대 고객) 회사라는 것도 큰 차이점 중 하나인데, B2C기업에서 CTO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몰로코는 기술 중심 회사였고 저 또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한국 지사 대표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반대로 클래스101에서는 비즈니스 중심으로 기술을 구현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 것이죠. 결국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단계마다 필요한 것을 채우는 역할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개발자에도 여러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유형에 가까우십니까?
"개발자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와 관리자(Manager)죠. 개인 기여자는 사람보다는 기계와 소통을 더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관리자는 이런 개인 기여자들의 협업을 돕고, 일을 더 잘하게끔 하는 사람이죠. 저는 줄곧 후자인 관리자 역할을 해왔고, 이 역할로 개발자 경력의 정점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어떤 방향성을 갖고 경력을 개발해 오셨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저는 사실 아마존에 있을 때만 해도 수많은 개발자 중 한 명에 불과했어요. 그러다 몰로코에 합류하면서 우연히 사람을 다루는 일을 경험하게 됐죠. 처음부터 관리자가 필요한 조직은 아니었는데, 회사가 성장하다 보니 관리자 역할을 누군가 해야 했고, 저도 경험을 확장하게 됐습니다. 개발자 한 명이 개발할 수 있는 양에 상한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발자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고, 이를 잘 살리기만 하면 팀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2, 3배의 생산성을 낼 수 있거든요. 이 때 맛본 성취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클래스101에 처음 왔을 때도 조직에 대한 진단을 다시 했습니다. 80여명의 개발자들의 역할을 크게 바꾸진 않았고, 조합만 다시 만들었습니다. 또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짚어줬죠. 이것만으로도 생산성이 많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며칠 밤새서 개발해야 하는 일에 보다 적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거죠. 이를 위해선 개발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력을 보니 텍사스대 석사 시절 머신러닝(기계학습)과 자연어 처리를 연구하셨어요. 그동안의 경력은 인공지능 기술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인공지능을 선택하게 된 건 사실 굉장히 현실적 이유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기술을 보유해야 더 오래갈 수 있을까'를 고려한 결과죠. 당시 전세계를 지배하던 회사는 구글이었고, 구글의 기반 기술은 '검색'이었죠. 이 기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 게 인공지능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석사 이후 박사 진학을 하진 않았고, 바로 미국 아마존에 취업했습니다. 몰로코 역시 '머신러닝의 끝판왕'과 같은 회사지만, 정작 저는 머신러닝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머신러닝 개발자들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이들을 채용하고, 성장하는 것까지 도울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구현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인공지능 중심의 사고는 할 수 있으니까요."
구현서 클래스101 CTO 주요 이력
2012~2016년 아마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2016~2021년 몰로코 엔지니어링 디렉터-한국지사 대표
2021년~ 클래스101 CTO
-클래스101에서도 AI 크리에이터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외에 인공지능 기술이 더 접목된 분야가 있나요?
"클래스101이 구독 모델로 전환되면서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으로 클래스를 제공하는 ‘개인화’ 전략이 중요해졌습니다. 구독 모델로 전환하기 전에는 사용자가 스스로 탐색해서 내게 맞는 클래스를 찾으면 상대적으로 큰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했죠. 지금은 저렴한 가격에 4,000여 개의 클래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어떤 클래스를 봐야할 지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추천이 필요하죠. 현재는 이 추천 기술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구독 모델로 전환하면서 나라별 장벽을 없앴습니다. 미국 사용자가 한국 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식이죠. 각국에서 나오는 클래스에 자막을 붙이게 됐는데, 워낙 클래스의 양이 방대하다보니 번역에 AI 기술을 쓰게 됐습니다."
-CTO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있을까요?
"저는 스타트업 C레벨에게 특히 중요한 능력이 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선 좋은 사람을 데려와서 잘 키우고, 또 떠나지 않게 잘 보상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모든 C레벨들에게 중요하겠지만, 특히 CTO에게는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봅니다. 기술로 먹고 사는 회사로 살아남으려면, 이 조직의 기술력이 굉장히 뛰어나고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죠. 때로는 이를 위해서 CTO가 직접 대외활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자 채용에도 깊이 관여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현재 국내 개발자 채용시장의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학이나 부트캠프 등에서 충분히 우수한 개발자들이 배출되고 있나요?
"한국 개발자들의 잠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성실하고, 굉장히 빠르게 흐름을 쫓아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몇가지 속성만 더해주면 충분히 훌륭한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죠. 관건은 이들이 실제 세계 최고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인데, 아쉽게도 그 인프라는 아직 부족합니다.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개발자 공급이 개발자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개발자를 채용 시장에 공급할 부트캠프(일종의 직업사관학교)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어요. 저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부트캠프가 실무 위주의 교육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비록 대학 때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추후에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트캠프가 이들을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산업계 적재적소에 공급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로 더 많은 개발자가 유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문화, 의료 등 참 잘하는 게 많죠. 그런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임 분야를 제외하고는요. 저는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나오려면 훨씬 더 짧은 호흡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결국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이죠. 스타트업 생태계의 외형이 더 확장되고 다양해져야 할 것입니다. 요즘 개발자들에게 '어디 취업하고 싶냐'고 물으면, 절반 이상이 스타트업을 희망한다고 한다죠.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으로 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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