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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작전에 투입된 우리 수송기는 왜 번번이 중국을 돌아서 날아왔나[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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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사우디아항공 SV898편이 지난달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킹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오전 4시 21분(현지시간)에 이륙했습니다. 9시간 54분 날아가 인천국제공항에 오후 8시 15분 착륙했지요. 이틀 뒤 같은 항로를 비행한 사우디아항공 여객기 또한 오전 4시 43분 출발해 인천공항에 9시간 47분이 지난 오후 8시 21분 도착했죠. 이처럼 제다에서 인천까지 민항기로는 대략 10시간 남짓 걸립니다.
사우디 제다는 우리 총영사관이 있는 중요 도시지만 관광 목적으로는 쉽사리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항로의 비행시간을 왜 짚어본 것일까요. 지난달 25일 내전 중인 수단에서 탈출한 우리 교민들을 고국으로 태우고 온 '프라미스(promise)' 작전 때도 우리 수송기가 제다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행시간이 달랐습니다. 항공기 추적사이트 ‘에어나브 레이더박스’에 따르면 우리 외교관과 교민 등 28명을 태운 우리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콜사인 ARGO302)’는 24일 오후 8시 54분(현지시간) 제다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튿날인 25일 오후 3시 57분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습니다. 13시간 2분이나 걸린 것이죠.
민항기를 이용할 때에 비해 수송기의 비행시간이 3시간가량 더 깁니다. 한국에서 일본 삿포로까지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더 허비한 셈입니다. 급박한 탈출작전 치고는 좀 이상하죠. 한시라도 빨리 고국에 오고 싶었을 텐데요.
민항기 SV989편은 보잉787-9 기종을 이용합니다. 우리 군의 KC-330은 에어버스의 여객기 A330-200을 기반으로 제작한 기종입니다. 여객기와 수송기로 쓰임새는 다르지만, 두 항공기 모두 세계 각국에서 민항기로 널리 쓰이고 있는 기종입니다. 순항 속도는 보잉787-9 기종은 시속 903km(마하 0.85), A330-200 기종은 시속 1,054km(마하 0.86)로 A330-200이 근소한 차이로 빠릅니다.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인천공항과 서울공항 간 거리를 감안하더라도 더 빠른 비행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KC-330이 왜 사우디아항공 여객기보다 3시간 이상 더 걸린 건지요. 이론적으로, 항공기는 지구상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대권 항로’로 비행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해야 시간은 물론 연료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제다와 인천 간 대권항로 거리인 8,300여km를 그대로 비행하지는 못합니다. 국제 정세 탓에 사용할 수 없는 항로도 있고, 험준한 산악지형 등도 피해서 운항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났다면 KC-330은 사우디아항공 여객기가 사용했던 항로를 사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날짜 | 기종(편명) | 최단거리 | 실제비행거리 | 비행시간 |
---|---|---|---|---|
4월 24일 (25일 착륙) |
KC-330 (ARGO302) |
8,401km | 1만1,297km | 13시간 2분 |
4월 26일 | 보잉787-9 (사우디아항공 898편) |
8,343km | 9,823km | 9시간 47분 |
사우디아항공 여객기와 KC-330 항로를 가른 차이점은 중국 영공 통과 여부였습니다. 사우디 여객기가 사우디-오만-인도-방글라데시-미얀마-중국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과 달리 시그너스는 중국 영공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사우디-오만-인도-미얀마-태국-캄보디아-베트남-필리핀-대만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사용했죠.
어디서 본 듯한 항로입니다. 바로 2021년 8월 '미라클 작전'입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특별 공로자들을 싣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이륙해 인천공항에 착륙한 KC-330 콜사인 ‘ARGO205’의 항적을 보면 ARGO205는 파키스탄과 인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을 거쳐 한국에 돌아왔죠.
그때도 중국은 거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특별 기여자들을 실어 날랐던 C-130J 수송기의 항로도 험난했습니다. 당시 공군은 카불과 인천의 직선거리는 약 5,000km지만 파키스탄에서 중간 정비를 하고, 중국을 피하고, 영공 통과를 허가한 우방국으로 돌아가느라 비행거리는 편도 1만km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습니다.
항로 차이는 왜 생겼을까요. 각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공중 영역인 ‘영공’ 때문입니다. 영공은 일반적으로 영토 혹은 영해 위의 상공을 의미합니다. 영공에 대해 국가는 완전하고 배타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영해가 영해 및 접속수역법상으로 해안의 저조선으로부터 12해리(약 22.224km)까지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영공도 영토의 하늘 및 해안의 저조선으로부터 12해리 내의 바다 위 하늘로 보면 됩니다.
문제는 민항기든, 군용기를 포함한 정부기든 모든 항공기는 타국의 배타적 주권 영역인 영공을 허가 없이 통과할 수 없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9·20조에 따라 군함이더라도 연안국의 평화·질서·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국 영해를 단순 통항하는 것이 허용되는 ‘무해통항권’이 항공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영공 통과 허가를 받는 데만 10일 넘게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프라미스 작전도 자칫 실패할 뻔했습니다. KC-330 이륙 전 모든 국가의 영공 통과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KC-330이 일단 이륙한 후 국방부·합참 통합 태스크포스(TF) 상황실은 각국 현지 국방무관 등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승인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조주영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장(공군 중령)은 국방일보에 “영공통과 국가마다 시차가 있어 일부는 새벽, 휴일이었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작전에 참여한 모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십분 발휘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냉전 종식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은 영공통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다만 이 협약은 민항기에 국한됩니다. 또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라면 민항기라도 사전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투입이 어렵습니다.
군용기의 경우는 더 까다롭습니다. 군용기의 영공 통과는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죠. 긴급 상황이라고 해서 군용기가 타국 영공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간 외교적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진대 우리 공군이 중국의 허가를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라클 작전’에 투입됐던 한 공군 관계자는 “군용기는 중국 영공을 통과할 때 외교적인 문제가 있어 동남아 국가들의 영공 통과가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군 당국은 당시 수송 작전과 관련해 중국 정부와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다. 아예 중국을 통과할 엄두조차 내지 않은 것이죠.
중국이 유달리 타국 항공기의 영공 통과에 까다롭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산 K-2 전차와 K-9 자주포 출고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결국 출고식에 오지 못했습니다. 중국이 폴란드 대표단 전용기의 영공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몽니'인 셈입니다.
다만, 우리 공군 수송기가 중국 영공에 진입한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 2008년 5월 쓰촨성 대지진 때 공군 수송기인 C-130 허큘리스 3대가 구호물자를 싣고 청두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당초 우리 공군은 수단 체류 국민의 귀환을 위해 공군 제5공중비행단 소속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와 임무요원 20여 명을 파견했습니다. 슈퍼 허큘리스는 김해기지를 이륙하고 24시간 넘게 비행해 내전 중인 수단의 포트수단에서 우리 국민을 사우디 제다로 후송하는 중책을 담당했습니다. 이후 제다에서 인천공항으로 날아온 수송기 시그너스에 모든 관심과 찬사가 쏠려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프라미스 작전 종료 사흘 뒤인 지난달 28일 김해기지로 복귀했습니다. 임무통제관 안효삼 대령은 "태극마크가 그려진 우리 수송기를 보고 안도감에 눈시울이 붉어진 교민들을 보면서 군인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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