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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최고금리, 지나침과 모자람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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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난 앞으로도 당신을 개라고 부를 거고, 계속 침을 뱉고, 발길질도 하겠소. 돈을 꿔주더라도 행여 친구에게 빌려준 거라고는 생각 마오. 새끼도 치지 못하는 쇠붙이에서 이자를 받아먹으려는 자가 어디 있소? 차라리 원수한테 돈을 꿔줬노라고 생각하시오. 그럼 계약을 어길 경우 떳떳이 위약금을 받아낼 수 있잖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인 안토니오가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러 와서 화를 내며 내뱉은 말이다. 당시 사회가 이자를 받고 대금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혐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뿐인가. 도스토옙스키의 저서 ‘죄와 벌’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알료나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 의해 살해된다. 그가 생각하기에 전당포를 하는 알료나는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샤일록과 알료나 모두 ‘고리대금업자’라고 불렸지만, 당시에는 조그마한 이자만 받아도 고리대금업자라 지칭했다. 중세의 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행위를 비판했다. 돈을 빌려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데 신의 소유물인 시간을 바탕으로 인간이 이익을 얻는 행위가 신에 대한 범죄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흔히 금리라고 부르는 이자율에는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 그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은 한국은행 기준금리일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거시경기 상황 그리고 금융시스템 안정성 등을 고려하여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기준금리는 변경될 때마다 주요 뉴스로 보도되기 때문에 유명하지만 가계나 기업이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금리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가계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금리에는 예금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신용대출 금리 등이 있다. 한편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가 주로 마주하는 금리에는 기업대출 금리, CP금리 그리고 회사채 금리 등이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금리가 존재하고 그 값도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금리’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되길래 그 값에 큰 차이가 존재하는가?
금리를 가장 간단히 정의하자면 ‘돈을 빌릴 때나 빌려줄 때 원금 이외에 주고받는 추가적인 대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왜 원금 이외에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하는가?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금융기관이 한국은행과 7일 만기의 자금 거래를 할 때 기준금리를 적용받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아닌 가계나 기업에 1년간 돈을 빌려준다면 향후 1년간 기준금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여 최소한 그만큼의 이자는 받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끝이 아니다. 금융기관이 가계나 기업에 1년간 돈을 빌려준다면 금융기관이 다른 용도로 돈이 필요하거나 수익률이 더 좋은 투자처를 찾아서 그곳으로 자금을 이동하여 운용하고 싶더라도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는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없다. 이를 ‘유동성 제약’이라 하고 유동성 제약으로 인한 잠재적 손실에 대한 대가로 유동성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그리고 유동성 프리미엄의 본질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도 대출 거래의 만기가 길수록 더 높은 유동성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한편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동안에 물가가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상승하여 화폐의 가치가 급락한다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만기가 돌아와 빌려준 돈과 이자를 돌려받아도 돈을 빌려줄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화폐 가치의 손실로 실질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 가치의 예상치 못한 변화에 따른 손실 가능성의 대가로 인플레이션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갚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돈을 돌려받지 못할 우려에 대한 대가로 금융기관은 신용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금리는 대출 만기까지의 기대 기준금리 경로에 더해 유동성 프리미엄, 인플레이션 위험 프리미엄 그리고 신용위험 프리미엄의 합으로 구성된다.
같은 금액을 같은 만기로 빌리더라도 누가 빌리는가에 따라 금리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신용위험 프리미엄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신용위험 프리미엄의 존재는 얼핏 보기에는 금융시장이 매우 부조리한 시장으로 비추어지게 한다. 신용위험 프리미엄은 채무 불이행 확률이 높은 사람들에게 높게 책정된다. 그런데 채무 불이행 확률은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그리고 고용 안정성이 낮아 미래 소득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높게 나타난다. 그 결과 같은 금액을 같은 만기로 빌리더라도 취약계층의 대출금리가 더 높게 책정된다. 이는 매우 안타깝지만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용위험 프리미엄의 존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법정최고금리를 도입하는 배경이 되어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7월 7일을 기점으로 법정최고금리를 기존 24%에서 20%로 낮추었으며 추가적인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가계에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모두를 야기한다. 먼저 법정최고금리 상한에 근접한 금리를 지불하던 가계의 대출금리가 인하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가계는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가구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취약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던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등에서는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됨에 따라 더 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가계에 대한 대출 공급을 거부하게 된다. 특히 채무 불이행 확률이 높은 가계들에 공급하던 대출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의 채무 불이행 확률이 더 높으므로 소득 수준이 낮은 가구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될 개연성이 높다.
법정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는 가계의 소비자 후생 증가 폭과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는 가계의 소비자 후생 감소 폭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는 신용대출의 금액은 주택담보대출 등의 여타 대출에 비해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금리인상에 따른 월 상환부담 증가는 제한적이다. 반면 시장에서 배제되는 차주의 소비자 후생은 큰 폭으로 감소한다. 따라서 법정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전체 소비자 후생은 일반적으로 감소한다. 결국 법정최고금리의 인위적인 하향 조정은 필연적으로 취약가구의 제도권 금융 이용 기회를 축소시키고 오히려 비제도권 시장으로 그들을 내몰 수 있다.
친구 바사니오의 부탁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안토니오는 그간 경멸해 마지않던 샤일록에게 바사니오가 3,000다카트라는 거액을 빌리는 데 보증을 서게 된다. 동시에 만기까지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보증인인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약 0.45㎏)를 베어낸다는 조건에도 합의하게 된다. 이후 안토니오는 결국 샤일록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고 살 1파운드가 베어질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이 계약에 대한 판결을 관장한 재판관은 계약서에 살 1파운드만이 명시되어 있을 뿐 피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살을 가져가되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리게 되면 샤일록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사형에 처할 것이라 선언한다. 이렇게 안토니오에 대한 복수에도 실패하고 재산도 몰수당한 샤일록은 절망에 빠져 법정을 나온다.
도대체 샤일록의 계획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시장경제는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맺어진 자발적인 계약과 체결된 계약의 건전한 이행을 통해 운영된다. 따라서 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마비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계약은 지켜져야 하는가?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하는 사채업자는 TV 연속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악역이다. 하지만 우리 법은 아무리 자발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한 계약이라도 사회질서에 반하는 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맺어진 대출 계약이라도 연이율 20% 이상의 계약은 무효이다. 그 이상은 사회 상규상 과도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그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제약이 너무 과도하면 그 피해는 다시 취약계층에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어느 수준이 적당한지 또한 그것이 시기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지 꾸준히 살펴보아야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던 공자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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