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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사과,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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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은 '과거사 반성 모범 국가'로 불린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옛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 서 있다가 비에 젖은 땅 위에 무릎을 꿇은 장면은 유명하다. 독일 지도자들은 나치 독일 피해국 방문 등의 계기마다 고개를 숙인다. 국제사회엔 '충분한 사과를 했다'는 공감대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럼에도 '충분한 사과'라는 용어는 피해자의 것이 아니었다. 나치 독일의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겨우 목숨을 건진 전쟁 피해자 에밀 파르키스(94). 지난달 만난 그는 오른쪽 귀가 조금 안 들리는 것 빼고는 건강하다고 했다. 자주 웃었고, 농담을 건넸고, 긍정적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파르키스의 현재엔 과거가 비쳤다. 80년 전 수용소 생활을 회상하며 그의 말은 빨라졌고, 많아졌다. 단 한 톨의 기억도 잊지 못한 듯했다. "죽도록 일했고, 죽도록 맞았다"고 했다. 전쟁 뒤의 삶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는 "살 집마저 없었기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잃었다. 두 형과 누나가 죽었다. 누나의 딸은 겨우 1세에 생을 마감했다.
파르키스는 '독일 정권이 충분한 사과를 했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충분한 사과'라는 조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충분한 사과라는 말이 가능한 말인가요?" 그는 반문했다. '전쟁 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아픔은 달래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과란 결코 충분할 수 없다.
독일이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것도, 사과란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역) 봉기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독일인이 이곳에서 저지른 범죄에 용서를 구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과 관련 "나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제대로 된 사과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한국 정부가 "사과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대승적 결단을 해줬다"며 칭찬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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