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뉴욕, 고골과 오 헨리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여행의 봇물이 다시금 터지는 요즘 분위기 때문인지 언젠가 한번은 여행을 가서 오래 머물고 싶었던 도시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좋아하고 그중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668년 완성한 '탕자의 귀향'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원본이 그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 도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도시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그 그림이 있다.
그림 때문에 관심이 간 도시이지만 그 밖에도 이 도시는 묘한 끌림이 있다. 먼저 이 도시의 터는 늪지대이다. 18세기 초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서구화 정책의 하나로 러시아 북서쪽, 핀란드만에 접한 네바강 삼각주 늪지대에 건설한 일종의 계획도시 수도였다.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이 '유럽으로 나아가는 창문'이라고 지칭했듯이 러시아의 근대화, 진보와 변화를 상징하는 도시다. 반면 건설 과정에서 일꾼 3만여 명이 사망하여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악명도 얻었다.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게 하는 아름다운 운하와 수많은 궁전, 성당의 정연하고 장엄한 자태 뒤에 대다수 주민의 가난과 고통이 짙게 드리워진 곳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과 이중성을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 역사학자 브루스 링컨은 북극권과 멀지 않아 이 도시에 흔히 생기는 백야 현상에 빗대어 '자정의 일광(SUNLIGHT AT MIDNIGHT)'이라고 표현했다.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쟁쟁한 러시아 작가들이 이 도시에 살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중 가장 상트페테르부르크적인 작가는 소설 '코', '외투'로 잘 알려진 니콜라이 고골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여러 단편소설에서 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환상기법으로 그려냄으로써 위에서 말한 이중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풍자의 웃음 뒤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고골을 생각하노라면 미국의 뉴욕과, 뉴욕 서민들의 애환을 단편소설에 담은 오 헨리가 떠오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뉴욕 사이에는 별 연관성이 없다. 도시 역사가 300~400년 정도로 비교적 짧고, 현재 수도가 아님에도 그 나라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는 점 정도. 오히려 그 도시를 생각하면 그 도시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가가 떠오른다는 점이 두 도시를 묶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골은 19세에 성공의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한 후 좌절을 겪자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을 품고 독일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고골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데 성공했다면 오 헨리에 앞서 뉴욕 사람들의 삶을 담은 소설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 보게 된다.
대개 경제적 목적으로 생면부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들어 함께 살아가는 도시 생활은 필연적으로 소외와 비인간화의 요소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 도시에 살면서 그 도시민의 애환을 소설로 담아내는 소설가의 존재는 조금이나마 그 도시를 인간화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시영 시인이 '춘천'이란 시에서 춘천에 40년 넘게 살며 춘천의 흔적이 있는 소설을 써온 오정희 선생을 이렇게 기렸듯이.
"소설가 오정희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역사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 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