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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에프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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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은 수십 년 동안 기계가 세계를 지배하는 내용의 공상과학영화 대본을 써 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빼앗으려는 로봇과 싸우고 있다.” 미국 영화·TV 작가들로 구성된 미국작가조합(WGA)의 총파업을 전하는 로이터 기사 첫대목이다. WGA는 “우리가 쓴 대본을 인공지능(AI)이 학습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우리는 AI가 쓴 엉성한 초고를 손보는 처지로 전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WGA의 ‘AI 대본 사용 금지’ 요구를 제작사들은 거부하면서 “AI는 초고가 아니라 수정본이나 요약 작업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작가들은 “AI는 표절 기계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등의 시나리오를 쓴 노라 에프론의 모든 대본을 AI에 입력하면, AI가 에프론의 필체로 새 대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런 AI 표절을 ‘노라 에프론 문제’라고 명명했다. 미 NBC 뉴스는 챗GPT가 작성한 미 유명 드라마의 새 에피소드 개요를 보도하면서 “에미상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작가들이 괴로워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AI가 위협하는 직업은 창의력이 필요한 작가뿐 아니다.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전문직 대부분이 그 위협에 노출돼 있다. 역설적으로 AI 개발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정보통신(IT) 업계 고급 두뇌들이 그 첫 희생자가 되고 있다. IBM은 최근 직원 30%를 AI로 대체하고, 신규 채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올 4월까지 미국 IT업계 감원 규모는 지난해 1년 치를 넘어섰다. 미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적으로 3억 개의 직업이 AI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은 지난 1일 구글을 그만두며 “(AI를 개발한) 자신의 업적을 후회한다”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AI는 곧 인간의 지능을 추월할 것이며, AI 챗봇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도 남겼다. 전 세계는 제대로 파악도 못 한 AI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기던 창의력, 판단력 그리고 그 대가인 지식재산권을 모두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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