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 붕괴’ 막으려면…합당한 수가 보상과 처우 개선이 우선

입력
2023.04.30 17: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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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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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크게 보면 의료의 어느 분야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수술이 어렵고 힘든 이른바 ‘기피과’일수록 젊은 의사들은 이탈하고, 기존 의사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숙련의들도 수도권 지역에 편중돼 있다.

의료 취약 지역에서는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 골든타임 내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뇌혈관 질환을 치료하는 신경외과 영역에서 이런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필수 의료가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라는 기준에서 신경외과는 필수 의료 분야에 포함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보건복지부가 정한 필수 의료 분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전공의 지원율 감소’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신경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지난 20년간 연평균 80~120명을 유지하고 있어 겉으로는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4년 전공의 수련 기간 중 이탈하는 비율이 15.43%나 된다. 전공의 기간을 마치더라도 상당수가 뇌 분야보다 척추 분야를 전공해 뇌 분야를 전공하는 전문의 숫자는 계속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야간 응급수술, 불안정한 환자 상태 등으로 인한 잦은 병원 호출, 수술 결과로 인한 의료 분쟁 위험 등 뇌 분야 전공을 기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뇌 분야는 여러 세부 분과(뇌혈관 수술, 신경 중재 시술, 뇌종양, 정위 기능, 소아 뇌신경)로 나뉘기 때문에 각 세부 분과의 전문의는 더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필자가 속한 뇌혈관외과 분야는 심각을 넘어 위험한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 가장 큰 원인은 ‘저수가(低酬價)’ 구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의 수술 수가는 미국에 절반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턱없이 낮다. 뇌혈관 수술 및 시술 수가는 일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수술 수가만 올린다고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OECD 평균 수준의 합당한 수가 보상이 필요하다. 수가 현실화가 단순히 의사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료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 보장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실 뇌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 수익은 오히려 감소한다. 의료사고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도 엄청나 병원에서도 뇌 수술을 독려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어렵고 위험한 수술과 잦은 당직을 감수하고도 신경외과에 남아 있는 의사ㆍ간호사ㆍ의료기사가 최선을 다해 수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수술 수가뿐만 아니라 야간ㆍ휴일에도 응급수술에 참여하는 의료 인력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더불어 뇌 질환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 뇌혈관 질환의 진료 체계는 허혈성 뇌 질환에 치우쳐 출혈성 뇌 질환에 대한 논의가 다소 부족하다. 신경과 의사와 신경외과 의사가 협심해 뇌 질환 환자들을 신속하게 잘 진료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현실에 맞는 운영 지침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명과 직결된 분야’를 필수 의료라고 정의할 때 사람 뇌와 척추를 다루는 신경외과는 당연히 필수 의료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가 공공재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길게는 10~20시간이 걸리는 고난도 수술을 하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당직을 서는 신경외과 의사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처우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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