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3'들은 고된 입시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다

입력
2023.04.29 04:40
12면

한일 입시 풍토의 비교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학력사회이지만, 일본의 입시 경쟁은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심하지 않다. 대학 및 전공 선택에 대한 자세도 한국과 일본 젊은이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 모두 학력사회이지만, 일본의 입시 경쟁은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심하지 않다. 대학 및 전공 선택에 대한 자세도 한국과 일본 젊은이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러스트 김일영


◇대학 입시와 장래 희망, 고3의 젊은이다운 고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일본인 친구 부부의 딸이 ‘고3’이 되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보아왔던 아이가 어느새 대입을 앞둔 나이라니! 친구 부부의 부탁으로, 일본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경험을 돌이켜 대학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아이는 요즘 대학생 삶이 실제로는 어떤지, 고교 수업과 대학 강의는 무엇이 다른지 등등 궁금증이 많았다. 장래에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고, 그 때문에 의학 혹은 심리학 전공이 목표라고 했다. 현대인에게 정신건강이 화두인 만큼 그 분야가 유망할 것 같다는 나름의 예측도 하고 있었다. 친구 부부는 졸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도 고생스러운 의대는 권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전공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태도였다. 대학 진학이라는 삶의 중요한 전기를 앞두고, 가치관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꼼꼼히 따지는 그가 퍽 대견했다. 그 나이 즈음의 젊은이에게 걸맞은 건강한 고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통해서 스스로 지망 대학을 고르고, 장래 희망에 걸맞은 전공을 목표로 삼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고된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의 고3을 떠올렸다. 그들도 이런 젊은이다운 고민을 할 여유가 있을까? 한국에서는 고3이 된 입시생이 대뜸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타박을 들을 것 같다. 요즘 인기가 최고라는 의과대학에 들어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의대를 목표로 삼는다면, 고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값비싼 개인 과외와 입시 학원으로 성적을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대학 입시는 당사자의 고교시절 3년뿐 아니라, 부모의 재력, 시간, 노력까지 통째로 ‘갈아 넣는’ 큰 프로젝트다. 그런 입시 풍토에서는 가치관과 장래 희망을 운운하는 입시생의 고민이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들리고 만다.

◇일본의 고3은 한국처럼 입시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다.

일본에도 ‘고3’은 대학 입시에 전념하는 수험생이라는 인식이 있다. 개별 과목의 공부를 돕는 사설 입시 학원도 있고, 대학 입시 지도에 중점을 둔 학습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소위 ‘진학고’도 있다. 일류 대학 진학률이 높은 진학고에 다니는 학생 중에는 입시 공부에 진심인 공부벌레 스타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평균적 견지에서 말하자면, 일본의 고교생들이 한국처럼 고된 입시 경쟁에 지쳐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수능 시험에 해당하는 일명 ‘센터 시험’에 대한 준비는 대체로 고3 때에 시작된다. 또 대부분 일본 학생들이 고교 정규 교육을 중심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대학의 전형 과정에서도 봉사활동 횟수나 수상 경력 등 양적인 평가 기준보다, 성격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회적 성취 등 질적인 평가 기준을 중시한다. 사교육 비율이 높아서 공부 부담이 큰 한국의 고3보다는 대입 준비가 훨씬 덜 빡빡하다.

일본도 한국에 못지않은 학력사회다. 하지만, 한국만큼 극심한 입시 경쟁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의 위상이나, 입시 제도, 교육 문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전국 대학을 한두 가지 평가 기준에 의해 ‘한 줄 서기’시키는 경향이 강하지 않다. 예컨대 학력이 제일 높은 학생들이 입학한다는 도쿄대(東京大)는 국가 공무원이나 전문 관료를 육성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학문과 연구를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교토대(京都大)가 더 인정받는다. 문과 계열에서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이 우수하다는 평가지만, 이과 계열에서는 역시 게이오대학(慶應大学)이 더 분발하고 있다. 이렇듯 대학마다 전문성이 다르고 교육 방침과 인재상도 제각각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 도쿄대를 목표로 삼지는 않는 것이다.

일본의 고교생들은 방과 후에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즐길 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다. 고교에는 공부와는 무관한 과외 활동을 벌이는 동아리나 클럽이 활성화된 경우가 많다. 많은 고교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나 클럽 활동에 참여하며 선후배들과 어울린다. 실제로 내가 지도했던 대학생 중에는 고교 시절 축구, 연식 야구, 배구 등 운동부 선수나 매니저로서 일찌감치 꽤 ‘찐한’ 사회생활을 경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교 관악단이나 경음악단에서 활동하면서 뮤지션을 꿈꾸게 된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케이팝 댄스나 힙합 댄스 등 퍼포먼스 계열의 클럽 활동이 꽤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입시 공부 이외에는 극히 제한된 사회 활동만을 경험하는 한국의 고교생들과는 사뭇 다른 학창 시절이다.

◇입시 경쟁에 몰두하기보다 다양한 추억을 쌓는 고교시절은 불가능할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비참한 제목의 영화가 화제가 되던 시절에 고3 시기를 보냈다. 고교 3년간 수업이 끝나면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교실에 매여 살았다. 그때에는 대학 입시 경쟁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을 따지기보다는 ‘나의 성적으로 합격 가능한 대학’을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했다. 입시 지도도 대학의 ‘간판’을 중시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해 낭패를 겪는 친구도 있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런 비정한 입시 풍토가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후대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덜 억압적이고 즐거운 고교 시절을 보내리라, 더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요즘의 세태는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는 듯이 보인다. 대학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들이는 수고는 예전보다 더 커진 듯하다. 대학에 따라 입학 요건이 다르고 전형 방식도 복잡하기 때문에 입시 카운슬링을 받기도 하고,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포트폴리오 등 서류 작성을 지도하는 전문가 서비스도 있다고 들었다. 봉사 활동이나 수상 경력 등 입시 평가에 도움이 되는 경력을 위해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악용하는 것이 드러나 눈살을 찌푸린 적도 많다. 대학이 존속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인구가 줄고 있다는데, 대입 때문에 고통받는 젊은이의 참담한 현실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학부모들 중에는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행복하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아이의 행복을 위하는 부모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런 단순한 생각의 근저에 한국 사회에 고질적으로 뿌리 내린 학력 중심주의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 신입생들을 비교하자면, 일본 젊은이들이 PC나 인터넷 활용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아야 할까? PC나 인터넷 활용 능력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 운동장을 누비거나, 직접 기획한 댄스 퍼포먼스를 무대에 올려보는 고교 시절의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인 것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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