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것도 사람, 먹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우리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식과 음식 이야기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떡을 찾는 손길이 분주하다. 우리는 예로부터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떡으로 전해왔다. 담백하고 은은한 맛, 포실하면서 때로는 쫀득거리는 식감. 맛도 모양도 새로울 것 없는 떡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식지 않은 온기를 느낀다.
쌀밥이 끼니를 책임지는 일상 음식이라면, 떡은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에 비유되곤 한다. 우리는 태어난 지 백 일째 되는 날 신성함을 상징하는 새하얀 백설기와 함께 하고,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혼례 날에는 봉치떡을 준비하며, 회갑과 제사 때는 높이 괴어 올리는 고임떡으로 돌아가신 분의 은덕을 기린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와 명절에는 자연의 형상을 닮은 떡을 먹으며 풍요로운 삶을 염원한다. 떡을 먹는 행위 안에는 단순히 맛과 영양의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깔려 있다.
최근 서양식 케이크를 대신하여 떡 케이크의 주문량이 급증하고 있다. 떡 케이크는 빵으로 만든 시트 대신에 백설기를 사용하고, 생크림 대신에 떡고물이나 콩고물을 올려 장식한다. 실제로 서양식 케이크 못지않은 화려하고 섬세한 외관을 뽐내어 젊은 층에서도 반응이 좋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부지런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밀가루와 버터가 주재료인 서양식 케이크보다 쌀로 만든 떡 케이크는 건강에도 좋으니 이래저래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떡 케이크의 기반이 되는 백설기는 '찌는 떡'에 속한다. 떡은 조리법에 따라 치는 떡(도병), 지지는 떡(전병), 삶는 떡(경단), 찌는 떡(증병)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찌는 떡인 '증병'은 우리나라 200여 개의 떡 종류 중 100개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조리법이다.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해 반죽한 재료에 간접적으로 열을 가하여 만든다. 물 또는 불과 직접적으로 닿는 조리법보다 물리적, 화학적 변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덕분에 재료 본연이 가진 맛, 모양, 영양소를 최대한 지킬 수 있으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조리법이다.
간혹 찌는 떡이 시루 안에 재료를 넣기만 하면 뚝딱 완성되는 단순한 조리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찌는 떡은 그 어떤 방식보다 섬세한 기술과 정성이 필요하다. 질거나 되어서도 안 되기에 적당한 수분 조절은 필수이며, 도중에 맛을 보거나 다른 재료를 첨가하여 맛을 보완할 수도 없다. 시루에 들어가기 전까지 곡물과 재료의 완벽한 배합, 물의 양과 불의 세기 조절 등 세심함을 넘어 숙련도 높은 내공을 요구한다. 까다로운 시간과 긴 기다림을 거치면 그제 서야 떡은 하얀 수증기와 함께 뽀얀 아이 같은 얼굴을 내민다. 이처럼 떡은 만드는 과정부터 내포된 의미까지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담은 한국 문화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2021년에 '떡 만들기'가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한반도의 다양한 지역에서 떡 만들기를 계승하고 유지하는 데 힘쓰는 사람이 많기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무엇보다 떡은 한국의 끈끈한 정을 나누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다. 지금도 여전히 축하할 일이 생기면 떡을 '먹는다'고 하는 대신에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떡은 우리에게 나눔과 배려의 상징이자 공동체 구성원의 화합을 위한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처음으로 떡을 먹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부터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떡 안에는 사랑, 위로, 감사와 같은 변치 않는 가치가 담겨 있다. 온갖 미디어에 둘러싸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서투른 시대다. 5월에는 미처 전하지 못한 크고 작은 마음을 떡에 담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