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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충격, 위기에 빠진 미 공화당의 희망 폭스뉴스

입력
2023.04.24 19:00
25면
미국 뉴욕 폭스뉴스 본사. AP 연합뉴스

미국 뉴욕 폭스뉴스 본사. AP 연합뉴스


신뢰비율 75%, '공화당의 보루' 폭스뉴스
미국 정치인, 유권자의 보수화에 큰 영향
정파갈등 증폭시킨 미 언론 행태 이어질 듯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는 지난 2020년 민주당이 특정 회사의 투·개표기를 조작해서 대선 결과를 조작했다고 수차례 보도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음모론에 큰 힘을 실어준 셈인데, 이로 인해 공화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도 2020년 대선은 사기라고 믿고 있다. 당연히 투·개표기 업체는 명예훼손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8일(현지시간) 폭스뉴스가 1조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두 가지 사실이 명확해졌다. 첫째, 폭스뉴스 경영진과 편집진 사이의 문자와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그들이 부정선거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사에 시청자를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보도를 감행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둘째, 미국은 한국과 달리 '나쁜 의도를 가졌다'는 직접 증거가 없으면 언론 보도에 명예훼손을 묻기 힘든데, 앞으로 몇 건의 비슷한 소송에서도 폭스뉴스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회사가 존폐 위기를 맞았다.

폭스뉴스는 호주에서 이민 온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1996년 설립했다. 당시는 CNN이 1991년 이라크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케이블 TV뉴스가 급성장하던 때였다. 특히 공화당 정치인과 당내 경선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1990년대 말 시청자 수를 늘렸고, 2001년 9·11 테러 당시 TV 화면 하단에 뉴스를 간단히 적어서 스크롤하는 '뉴스티커(news ticker)'를 처음 도입해 인기를 끌면서 2002년 시청률 1위가 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매일 저녁 평균 210만 명이 폭스뉴스를 보고 있는데, 경쟁자인 CNN의 2배가 넘는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폭스뉴스는 그 시청자들의 보수적 이념성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020년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65%가 정치 및 선거 뉴스를 폭스뉴스에서 접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CNN, NBC, ABC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또한, 보수적인 미국인의 75%가 폭스뉴스를 신뢰한다고 대답했는데, 2위인 ABC뉴스의 3배 수준이다.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다. 미국경제학회보에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폭스뉴스를 1주일에 2.5분만 더 시청하면 공화당 대선후보의 득표율이 평균 0.3%포인트 상승한다. 또, 2000년 이후 증가한 폭스뉴스의 지역별 시청률을 통해 역산해보니, 폭스뉴스 덕분에 공화당 후보의 득표율이 2004년 3.59%포인트, 2008년 6.34%포인트 증가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서 조지아 0.3%포인트, 애리조나 0.4%포인트, 위스콘신 0.6%포인트의 표차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영향력이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후보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정치학회보에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말까지 폭스뉴스가 새롭게 방영되기 시작한 지역에서는 정치 경력이 풍부한 실력 있는 신인들이 공화당 깃발을 달고 민주당 현역의원에게 도전한 사례가 폭스뉴스가 방영되지 않은 지역보다 더 많았다. 폭스뉴스가 공화당 지지율을 늘려준다는 점을 후보자들이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또, 의회에 진출한 이후 하원의원들의 본회의 투표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연구진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폭스뉴스가 새롭게 방영된 지역의 하원의원들 중 공화당 출신은 같은 당의 동료의원들과 비슷하게 투표하면서 보수 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반면 이 지역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거꾸로 온건한 성향을 강조할 수 있도록 같은 당의 동료의원들과 다르게 투표했다. 폭스뉴스 때문에 보수화될 유권자를 생각해서 본회의 투표에 임한 것이다.

이번 일로 폭스뉴스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하지만, 정당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최근 미국 언론의 특징이 이번 일로 어느 정도 바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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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민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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