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보유 전세사기 주택 채권, 캠코가 공공매입 검토

입력
2023.04.24 18:00
수정
2023.04.24 19: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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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주택 절반가량 대부업체 보유
캠코가 인수한 뒤 LH 등에 재매각
부실채권 인수 가격이 '성공' 관건

20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의 한 아파트에 구제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20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의 한 아파트에 구제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이 보유한 사기 주택 채권을 사들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NPL 회사를 운영하는 영세 대부업체가 금융당국이 요청한 경매 유예에 난색을 표하자, 캠코가 주택을 공공매입하는 안이 급부상한 것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NPL 매입기관이 경매를 유예하지 않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택 채권을 캠코가 대신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NPL 매입기관은 은행권이나 상호금융권에서 사들인 부실채권을 경매 등으로 되팔아 수익을 거두는데, 경매 일정을 미루면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소극적이다. 실제 20일 경매가 유예되지 않고 진행됐다 유찰된 4건은 모두 영세 대부업체의 NPL 매입기관이 가진 채권이었다. 당국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택 중 절반가량이 이들 대부업체 등에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캠코의 공공매입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있다. 실제 캠코가 NPL 매입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피해주택 채권을 매입하면 캠코가 주택 채권을 갖게 되고, 피해자인 세입자가 이주할 때까지 경매를 유예할 수 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캠코 채권을 사들인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운영하게 되면, 피해자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장기임대로 거주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세입자 보호를 위한 최적의 방법 중 하나"라며 “현재의 전세사기 물량을 캠코가 매입하는 데 문제는 없고, 절차적 하자도 없다"고 말했다.

캠코가 NPL 매입기관으로부터 부실 담보채권을 사들이는 건 이례적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6조2,000억 원을 투입해 10조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한 바 있다. 이후 재매각 등을 통해 6조6,000억 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관건은 매입 가격이다. 통상 캠코는 회계법인 두 곳의 평가를 거쳐 채권 매입가격을 결정하는데, NPL 매입기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가금액 대비 고가에 매입하더라도 혈세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캠코의 공공매입 방안은 야당의 '선(先) 지원·후(後) 구상권 청구' 방안과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캠코가 채권을 매입해 세입자에게 피해금액을 먼저 보상한 뒤, 경매 등으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사기 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먼저 보전해주고,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결국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워 주라는 것"이라고 재차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당정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사들일 때 내는 취득세, 경매 수수료 등 관련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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