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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암살자’ 폐동맥고혈압,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

입력
2023.04.23 07:40
수정
2023.04.23 16:1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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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폐동맥고혈압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2.8년밖에 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폐동맥고혈압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2.8년밖에 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폐동맥고혈압은 40대 후반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평균 2.8년밖에 살지 못하는 희소 난치병이다. 가정에서는 자녀를 둔 엄마, 남편의 아내, 친정 부모의 딸과 시부모의 며느리 역할을 하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인데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계단 오르면 숨차고, 어지럽고, 쉽고 피곤해지는 등 아주 흔한 증상만으로 폐동맥고혈압을 진단하기란 쉽지 않다. 팔에 커프를 감아 혈압을 측정해 진단하는 고혈압과 달리 폐고혈압은 오른쪽 심장에서 몸속에 숨겨진 폐혈관으로 뿜어져 나가는 폐동맥 혈압이 올라가는 질환(평균 폐동맥압 20㎜Hg 이상)이다. 폐고혈압 중에서도 드문 폐동맥고혈압은 소리 없이 다가와 가족 행복을 빼앗아가는 안타깝고 무서운 질환이다.

폐동맥고혈압은 원인이 불분명하고 선천성 심장 질환이나 유전자 변이 등으로 발병한다. 유전성일 때에는 가족의 60~80%가 잠재적 환자다. 100만 명당 5~15명에게서 발생하는데, 국내에서는 6,000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50%도 되지 않는다.

2004~2018년 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폐동맥고혈압 팩트 시트’가 발표됐는데, 국내에서도 제대로 진단해 표적 치료제의 2~3가지 약을 병용해 치료하면 생존 기간을 2.8년에서 13년으로 10년 이상 늘린다는 게 밝혀졌다.

폐동맥고혈압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전체 표적 치료제 중 가장 강력한 3가지 표적 치료제가 10여 년 전에 나왔지만 정부의 무관심, 글로벌 제약사들의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등으로 인해 아직도 국내에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이 이 치명적인 질환의 제대로된 치료제를 써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ㆍ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적극 나서 에포프로스테놀ㆍ타달라필ㆍ리오시구앗 등을 국내에서 쓸 수 없도록 만든 낮은 약값 설정 문제 등을 해소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질병관리청이 2018년부터 전국 23개 병원에서 심층표현형 연구를 위한 ‘폐동맥고혈압 등록 사업(PHOENIKS)’을 통해 바이오뱅크가 구축되는 장기 추적 코호트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다중오믹스 연구로 한국인 특이 바이오마커와 표적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오는 7월 14~15일 이틀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PH Korea 2023 with EASOPH’를 개최한다. 한국ㆍ중국ㆍ일본ㆍ대만 등이 2019년 동아시아폐고혈압학회(EASOPH)를 창립해 학술 교류를 활발히 진행 중이며, 공동진료지침 제정ㆍ환자등록사업ㆍ심층표현형 연구 등을 함께 진행하는 등 아시아 폐고혈압 환자에게 걸맞은 치료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다시 한번 폐고혈압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조기 발견과 전문 치료로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끝으로 ‘Dum spiro spero!(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경구로 폐고혈압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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