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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워서, 부주의해서 당한 게 아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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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하기 전인 2021년 2월로 돌아간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확인했어야 속지 않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들이 부주의해서, 잘못 배워서 당했다는 편견이 가슴 아파 적는다"며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진 제가 왜 이런 사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피해자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가 자신이 전세사기 매물을 계약했던 과정을 복기한 글이다. 작성자는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미추홀구청·중구청, 공인중개사 협회가 모두 공범과 다름없었다"고 지적했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작성자 A씨에 따르면, 그가 당한 전세사기 시점은 202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니던 회사에서 인천으로 발령받아 집을 알아봐야 했던 A씨는 네이버부동산 홈페이지를 통해 미추홀구에 인천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매물이 많이 올라와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1억 원대 전세 매물을 올린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찾아갔다.
모든 조건이 적당해 보였지만, 공인중개사가 발급해 보여준 부동산 등기부등본에는 제2금융권이 설정한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1억6,500만 원이 설정돼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일반적으로 '근저당(채권최고액)+내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의 70%'를 넘으면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A씨는 "저도 남들만큼 공부한 사람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근저당권이 없는 매물은 없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자 공인중개사는 A씨에게 "미추홀구 매물들은 모두 근저당을 끼고 있다"며 "만약 경매에 넘어간다고 해도, 이 건물의 실거래가격은 3억 원 내외이기 때문에 경매가 개시돼도 충분히 보전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공인중개사협회가 보증하는 2억 원짜리 보험에 가입해 뒀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설득했다.
A씨가 네이버 부동산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매매가를 찾아보니 최근 2억 원대 중·후반 가격에 동일 매물 수십 호가 거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 본 결과, 모두 LH에서 매입한 것이었기에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 작성 전,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근저당권이 설정된 매물에 대해선 보험가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내가 이 매물을 전담 거래하는 공인중개사인데 단 한 번도 사고가 터진 적 없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A씨는 "매매 시세가 최소 2억5,000만 원일 것이고 내가 전세보증금 1억 원에 들어가 살다가 경매가 개시돼 손해를 보더라도 약 1,000만 원 일거라는 판단에 그 정도는 2년간 월세라고 생각해 감수해야겠다고 생각해 계약서를 썼다"고 했다.
해당 집에서 살던 A씨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9월 퇴근하면서 엘리베이터에 붙은 한 안내문을 보고서였다. "수협은행 감정가가 3억7,000만 원으로 최종 결정됐다"면서 "분양을 희망하는 가구에 대출상담과 관련 안내를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등기부등본을 떼어 봤더니, 그가 살던 집에는 계약 당시 등기부등본에선 보지 못했던 국세 압류 기록이 있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A씨가 계약할 당시엔 체납된 세금을 냈다가, 계약 이후엔 다시 체납하기 시작했다. 등기부등본 발급 기본옵션은 '말소사항 포함'이지만, 공인중개사가 임의로 '현재 유효사항'만 표시되도록 인쇄해 주었기 때문에 당시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없다며 호언장담했던 공인중개사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임대인도 휴대폰 번호를 바꾼 후였다.
혹시라도 경매에 넘어갈 것을 대비해, 계약 당시 확인했던 실거래가 역시 한 인천 지역 간부가 뇌물을 대가로 미분양 오피스텔을 고가로 매입해 높였던 가격이었다. A씨는 "60건이 넘는 거래가 모두 LH 간부가 뇌물을 받고 고가로 매입하게 했던 거래라고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냐"고 토로했다.
공인중개사협회가 보증한다는 보험증서도 보상 총액이 2억 원이었을 뿐, 모든 사람에게 2억 원까지 보상해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내 전세금이 1억 원인 만큼 보험 최고 보상 한도가 2억 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를 300건이나 쳤는데, 피해자가 300명이어도 공인중개사협회는 딱 2억 원만 보장해 준다. 그나마도 피해자가 나눠 갖는 것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했다.
집주인이 2018년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던 만큼, 중구청(등록관청) 또는 미추홀구청(소재지관청)에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대로 임대보증금에 대한 보증가입을 하도록 감독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현재 A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살던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전세금 1억 원은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미추홀구청, 공인중개사협회뿐 아니라 미추홀구 소속 국회의원까지 찾아갔고, 수차례 연락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사이 같은 가해자에게 당한 20~30대 피해자 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LH, 미추홀구청, 해당 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협회 등이 '공범'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는 소득요건이 아슬아슬하게 초과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도 받지 못한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더 열심히 살겠다"면서도 "다만 젊은이들의 소중한 세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들은 응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의 단초를 제공한 LH, 전세사기의 공범인 공인중개사와 그들을 관리하는 공인중개사협회, 임대사업자의 관리를 소홀하게 하면서 실제 임차인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미추홀구청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다시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 2월로 돌아간다고 해도,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알 만큼 아는 사람이 왜 전세사기를 당하냐는 비난에도 이제는 그냥 웃는다"며 "그런데 다시 돌아가도 무엇을 어떻게 확인했어야 속지 않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이게 죽을 일이냐고, 누군가는 1억이 큰돈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나 내 어깨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경우 내가 잃은 건 단순히 돈이 아니고 가족의 신뢰이자 희생이다. 부디 더 이상 피해자를 손가락질하지 말고,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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