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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 중 20명이 잠자는 고교 교실...AI 교과서가 깨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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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통합부터 대학개혁까지. 정부가 교육의 틀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한국일보는 교육계 전문가 13명에게 이번 정부 교육개혁 정책의 기대효과와 부작용, 위기와 기회 요인(SWOT)을 물었습니다. 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할지, 잠자는 교실은 일어날지, 대학을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은 무엇일지 5회에 걸쳐 분석합니다.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백석초 5학년 1반 수학 수업 시간. 1단원 '자연수의 혼합계산'과 2단원 '약수와 배수'까지 개념 학습을 끝낸 학생들의 책상에는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 PC가 1대씩 놓여 있었다.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학 학습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태블릿에 제시된 곱셈과 나눗셈이 합쳐진 수식 계산 문제를 푼다.
'운동장에 학생이 4명씩 12줄로 서 있습니다. 8명이 한 모둠이 돼 줄넘기를 하면, 몇 모둠을 만들 수 있나요?'
학생이 화면을 터치해 답을 입력한다. 틀렸다면, 실수인지 몰랐는지를 가리기 위해 같은 개념을 담은 '쌍둥이 문제'가 뜬다. 알고리즘이 이전 학습 결과를 분석해 보충할 문제도 띄워준다. 이 학급의 학생 21명은 저마다 문제 푸는 속도가 다르다. 문제 풀이를 마친 학생이 'AI 오답 분석'을 누르면 '맞힐 수 있는데 틀린 문제', '몰라서 틀린 문제', '찍어서 틀린 문제'를 분류한 '오답 노트'가 나온다.
담임인 천석경(49) 교사는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긁적이는 학생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묻고 가르쳐준다. "화면이 안 눌러져요"라며 '기술 지원'을 요청하는 아이도 있다. "다 풀었는데 뭐 해야 해요?"라는 질문도 나온다.
천 교사가 교탁의 PC를 켜고 '성취도 대시보드'를 열자 학생들의 성적과 학습 진행도가 나온다. 특정 학생이 문제 정답을 맞히기 위해 몇 번이나 '재도전'했는지도 체크된다. 천 교사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보충학습을 하려면 이전에는 아이들 점수대에 맞게 각각 문제지를 따로 줬어야 했다"며 "그런 작업은 AI 프로그램이 해주니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년 뒤부터는 전국의 학교에서 이 같은 수업이 진행된다. 2025년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수학, 영어, 코딩(정보) 과목에서 AI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게 교육부의 계획이다. 교육부는 "개별 맞춤형 교육으로 교실을 깨어나게 한다"는 정책 목표를 올해 연초 주요 업무추진계획에서 밝혔고, AI교과서를 도입하는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을 첫 번째 정책으로 강조했다.
교육부가 정책을 발표하며 "교실을 깨어나게 하겠다"고 강조한 건 그만큼 '잠자는 교실'의 실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엿볼 최근 자료는 지난해 9월 좋은교사운동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일반고 교사 26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가 있다. '고3 25명 반에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몇 명인지'를 묻는 질문에 거의 전부인 21~25명이라고 답한 교사가 17%나 됐다. 16~20명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6%였다. 0~5명만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교사들이 가장 많이 꼽은 학생들의 수업 중 '딴짓'은 '수업과 무관한 학습하기'(57%, 복수응답)였고, '수업 중 잠자기'도 33%에 달했다.
조사 결과가 과장된 게 아니다. 서울의 한 일반고에 다니는 김모(17)군은 "야간 자율학습은 신청하지 않았지만, 오후 4시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서 밤 10시까지 공부를 한다. 잘 준비까지 마치면 자정쯤 된다"며 "친구들도 비슷한데, 그러다 보니 1교시에는 잠이 쏟아져 25명 중 5명 정도를 빼고 대부분 존다"고 했다.
경기 안산시의 A고 서모 교사는 "50%의 학생들은 아예 학업에 대한 의지가 없는 상태"라며 "물론 이들이 전부 자거나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생활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겠다'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서 교사는 "이런 학생들은 논술, 발표, 주제탐구 같은 활동을 해도 백지를 내거나 노래 가사, 편지를 쓰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에듀테크 활용 여부 등에 따른 학생의 수업 참여 실태 조사를 정책연구과제로 내걸었고 이번 달부터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정부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은 교사 한 명이 여러 명의 학생에게 '1대 다'로 지식을 전달하던 수업 방식에서 '잠자는 교실'이 시작된다는 진단을 깔고 있다. 학생들의 실력은 제각각인데 교사 1명이 모두에 맞는 수준으로 수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백석초등학교처럼 AI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에 대한 '1대 1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질 걸로 보고 있다.
한국일보 교육개혁 자문단의 전문가들도 AI교과서가 '맞춤형 학습'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개별화 맞춤형 학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대적 요구"(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공교육에 도입해서 학습 결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이범 교육 평론가) 등의 분석이 나왔다.
평가·분석 업무 부담이 줄어든 교사들이 학생을 관찰하고 상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기대효과도 제시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업 자료 준비, 수업 진행, 평가 부담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듀테크를 수업에 활용해본 교사들은 개별화 교육 전환이 갖는 의미에 기대를 갖고 있다. 윤진석 서울 서라벌고 교사는 "학업 성취가 부족한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질문을 안 하게 된다"며 "AI교과서를 통해 개별적으로 학습하고 피드백을 받으면 그런 걱정을 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서영 경기 솔터초 교사는 "종이 교과서는 아이들이 집에 가서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에듀테크 기기를 활용하면 과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했는지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어 그에 맞춰 학생을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를 교육에 접목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쟁점이 크지 않은 점은 '기회요인'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AI·에듀테크 기술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어 맞춤형 교육을 구현할 기술적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며 "여야의 정치적 쟁점이 적고 정부의 추진 의지가 높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러나 AI교과서 도입만으로는 '잠든 교실'의 문제를 풀기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입시제도, 사교육 같은 '교실 밖' 원인에 주목하는 관점들이다. 장지환 서울 배재고 교사는 "잠든 교실은 입시제도의 문제"라며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듣게 만들어 놓았는데, 수능만 잘 봐도 대학에 갈 수 있으니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 시간엔 그냥 자버린다. 수능과 관련된 과목도 학원에서 듣고 학교 수업은 안 듣기도 한다"고 했다. 좋은교사운동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교사의 93.5%가 '학교 수업을 듣지 않아도 입시에 별 어려움이 없는 현행 제도'를 잠든 교실의 원인으로 꼽았다.
교육의 '계층 이동 사다리' 기능이 약화하면서 교실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산 A고의 서 교사는 "지난해 이미 태블릿PC가 보급됐고, 논술·발표·주제탐구 같은 수업을 하고 있지만, 부모나 교사가 동기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좋은 대학을 가면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막연한 희망도 갖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라고 했다.
또 학생들이 자는 이유는 말 그대로 '피곤해서'이기도 하다. 2021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에 따르면, 하루 6시간 넘게 자지 못하는 고3 학생의 비율은 50.5%였다.
한국일보 자문단 전문가들도 '잠든 교실'을 혁신하기 위해선 보다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희 대구대 교직부 교수는 "교실 교육의 결과가 입시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잠든 교실과 입시제도는 밀접하다"고 했다. 성기선 교수는 "에듀테크로 개별화 수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AI교과서는 보조적 도구인데, 이로 인해 엄청난 교육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현장 교육의 질을 오히려 추락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AI교과서의 안착을 위해선 이미 교육 시장에 나와 있는 스마트 학습지와 차별된 내용을 담는 게 필요하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스마트 학습지 특유의 반복적 문제 풀이, 학원식 첨삭지도 방식이 도입될 경우 획일적인 수업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AI교과서가 도입되면 교사의 개별 상담과 코칭이 중요해지는 만큼, 교사들의 역량을 키우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디지털 기기 보급을 위한 예산 확보 문제는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인터넷에 연결할 무선망은 대부분의 학교에 구축돼 있지만(학습 공간 대비 구축률 115.3%), AI교과서를 구동할 디지털 기기의 보급이 더디고 지역 편차도 크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의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서울시교육청의 디지털 기기 보급 예산은 시의회에 의해 삭감돼 정책의 실효성을 얻기 힘들다"고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초·중·고생 약 532만 명에게 약 269만 대의 디지털 기기가 보급돼 보급률은 50.6%다. 서울의 경우 보급률이 31.6%로 평균보다 낮은데, 지난해 서울시의회에서 디지털 기기 보급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이달 추가경정예산안을 겨우 통과시켜 293억 원으로 중1 학생에게 디지털 기기를 보급할 수 있게 됐다.
AI교과서 민간 개발사들에게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 접근을 허용할지도 쟁점이다. 민간 개발사들은 학생 수백만 명의 성적과 학습 패턴 등의 데이터를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사교육 시장만 키울 거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데이터 개방 여부는 당장 정해진 것이 아니다. 개발 업체와 학교 현장 얘기를 들으며 접점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교육개혁 자문단(가나다 순)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김민희 대구대 교수, 김병주 영남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반상진 전북대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이범 교육평론가,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조상식 동국대 교수
※글 싣는 순서
①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한가
②잠자는 교실 깨우려면 필요한 것들
③위기의 대학, 재도약의 필수조건
④실효성 있는 인재 양성 정책의 실마리
⑤교육계 뒤흔들 남은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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