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온기 식은 현금 없는 사회

입력
2023.04.20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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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백반집이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할아버지가 주방에서 찌개와 고등어를 굽고 계시면 할머니는 부지런히 밑반찬을 접시에 옮겨 담아 한 상 차려주신다. 오늘도 반찬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는 그때, 식당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수저를 내려놓고 귀를 쫑긋 세워 상황을 파악한다. 반주를 즐긴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말했다. "여기 얼마 나왔어요?" "6만9,000원이요!" 할아버지는 손님에게 받은 카드로 6만9,000원을 결제했다. 그런데 손님이 왜 3개월 할부를 하지 않고 일시불로 긁었냐며 큰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아닌가? "방금 결제된 거 취소하고 3개월로 긁어요. 안 그럼 나 돈 못 내." 할아버지의 표정이 난감하다. 옆에서 할머니는 '이미 긁었지? 어쩌면 좋지'라 말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할아버지는 '됐어'라 말하며 이미 일시불로 긁은 영수증과 카드를 쥐고 있었다.

난처해하고 있는 두 분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사장님, 제가 대신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아가씨가 할 수 있냐면서 내게 카드를 바로 쥐여주셨다. 직전 거래를 취소하고 3개월 할부로 다시 결제했다. 서점 운영하면서 카드 단말기 사용법을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분은 내게 아가씨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면서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현금 사용이 점차 사라지고 카드로 모든 생활이 가능한 시대. 노부부에게도 카드 단말기 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을 것이다. 카드를 넣고, 숫자를 입력하고 카드와 영수증을 주는 일은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하지만 결제를 취소하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으니 당황하셨겠지. 나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카드 사용은 편리하지만 카드 결제와 연결된 부가적인 일들이 모두에게 편한 건 아니었다.

며칠 전 마트 푸드코트 키오스크 앞에서 줄을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현금을 줄 테니 대신 카드로 결제를 해 줄 수 있냐는 거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2,000원을 받고 카드로 결제해서 커피를 건넸다. 출근길 탔던 버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고 자리를 잡았는데 뒤이어 탄 어르신이 현금을 내려고 하자 기사님이 말했다. "이 버스는 현금은 안 받아요. 카드로만 가능해요." 그제야 버스 앞에 쓰여 있던 '현금 없는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내려야 할지 타야 할지 당황하고 있는 어르신을 대신해 내 카드를 단말기에 한 번 더 갖다 댔다.

종종 가는 대형마트에서는 계산원이 줄어들고, 카드 결제만 가능한 자의 계산대가 늘어나고 있다. 식당에서도 키오스크로 통한 카드 결제가 대부분이다. 백반집 사장님도, 마트의 이웃도, 버스에서 만난 어르신도, 현금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의 불편함은 타인의 존재에 기대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변화도, 비용 절감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누군가를 소외시키며 변화하고 있는 현금 없는 세상은 괜찮은 걸까? 변화하는 시대에 모두가 적응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걸까?

카드 한 장만으로 외출해서 전혀 불편함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카드 사용이 어렵거나, 카드가 없거나, 카드 단말기 혹은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이들은 일상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있다.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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