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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이 감춘 진실…"병으로 돈 버는 산업, 중독뿐" [터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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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중독에 중독되는 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이 낳은 숏폼(수십 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 소비 열풍을 곱씹어보자. 짧고도 강렬한 수십 초짜리 짧은 콘텐츠의 매운맛은 너무나 중독적이었다. 수십 분짜리 롱폼(긴 분량의 콘텐츠) 콘텐츠에 대한 오랜 중독을 단박에 대체했다.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스냅챗의 스포트라이트 등 여타 초거대 플랫폼으로 숏폼은 순식간에 번졌다.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 수십억 모바일 사용자의 손가락질 한 번에 수백억, 수천억 회의 숏폼이 무한 재생되고 있다. 여기에 플랫폼 알고리즘이 숏폼에 '클릭 세례'까지 부어주면서 힘은 더 강력해지는 중이다.
좋든 싫든 이 중독을 피하기도, 멈추기도 힘들다. 숏폼 중독이 마약과 알코올과 같은 전통적 물질 중독을 상황과 닮은 이유다. 극소수의 일탈로 치부되던 마약이 어느새 사회 구석구석을 파고든 이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늘면서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는 이들이 급증한 배경도 중독에 중독되는 사례들이라 할 만하다.
담배·마약·알코올 등 물질 중독에서부터 SNS·쇼핑·도박 등 행위 중독까지. 중독의 위험은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다. 개인의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중독의 종류와 침투 대상 그리고 심각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에코의 마음 청소'는 중독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알기 위해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을 18일 만났다.
이 이사장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너무나 쉬운 '중독 산업'이 도처에 널려있는 현실, 그리고 이에 대한 예방과 치료의 실패가 국내 중독 문제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으로 돈을 버는 산업은 중독밖에 없다"며 "알코올이나 SNS처럼 접근이 쉬운 산업에 기업들은 오히려 소비를 더 장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술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술로 인한 질환이나 중독 등으로 사망한 사람은 4,928명에 달했다. 1일 평균 13.5명이 알코올에 의해 사망한 셈이다. 심지어 코로나19 기간 중에는 더 심각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알코올사용장애 환자 중 사망자 수는 2019년 156명에 머물렀지만, 2020년 204명, 2021년 215명으로 각각 30.8%, 37.8% 급증했다.
변연계(뇌에서 감정과 쾌락 등을 주로 담당하는 부위)의 복수가 시작됐다'는 말이 있죠. 팬데믹으로 전두엽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인위적으로 변연계를 억압하고 있었죠. 사람들은 모두 억제하고 조심하며 살다가 엔데믹으로 다양한 욕구가 지금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음주운전 등 알코올 사용에 따른 범죄와 관련, 이 이사장은 처벌 강화보다도 음주 접근성을 낮추는 게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에선 와인이나 맥주협회에서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광고모델을 쓰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등의 정책을 쓰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한때 오후 10시 이전에는 공중파에서 소주 광고를 할 수 없게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술과 관련된 제한이 많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의 가장 큰 문제로 '소주'를 꼽았다. 값싸고 도수 높은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주류소비량은 순수 알코올 8.5리터에 달하는데, 이 중 5리터가 소주다. 그는 "한 종류의 술이 순수 알코올 소비 비율에서 50% 이상인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주는 중년 남성이 먹는 술이라는 인식도 많이 사라진 상황. 그는 "주류 광고가 많아질수록 20대 여성의 음주가 증가하고, 소주의 도수가 낮아질수록 30대 여성의 음주가 증가한다"며 "30대의 알코올 간경화 발생률은 여성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고위험 음주율(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은 7잔, 여성은 5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음주)은 여성의 경우 30대(9.1%)와 20대(8.2%)에서 가장 높았다.
너무나 쉽게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사회도 문제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처럼 술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나라도 드물다"며 "외국은 문화 자체가 생활하는 곳과 술을 사는 곳, 마시는 곳이 분리돼 있다"고 말했다. 또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등 코로나19 때의 생활패턴은 선진국의 기존 문화였다"며 "우리나라도 평일에 회식을 하는 등 술을 언제든 마실 수 있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알코올 사용장애를 의심해볼 만한 자가진단법으로는 '케이지(CAGE) 지표'가 있다. △금주를 시도하려고 고민해본 적이 있나(Cut) △술 문제로 주변에서 금주를 강권하거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나(Annoyed) △음주 문제로 후회나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나(Guilty) △아침 음주나 해장술을 먹은 적이 있나(Eye-opener) 중 2개만 해당돼도 알코올 의존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술처럼 자극적 숏폼 콘텐츠로 얼룩진 SNS도 강력한 중독을 야기한다. 최근 한 전문가의 "숏폼은 합성 마약과도 같다"고 한 지적에 대해 이 이사장은 "자극에 대한 내성이 생기니 콘텐츠에 더욱 강렬한 요소만 넣게 되는데 대표적인 게 숏폼"이라며 "요즘 청소년은 웹툰이나 만화도 보지 않는데, 그 안의 스토리와 맥락을 파악하기까지 기다리기 귀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순간적인 재미만을 추구하게 되면서 1시간 이상 하나의 콘텐츠를 소비하기 싫어한다는 얘기다. 그는 "짧고 강렬한 콘텐츠에 뇌활동이 집중되다보니 전전두엽의 기능이 자꾸만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단순 몰입과 중독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 이사장은 "△명백히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데도 줄이지 못하는 경우 △(중독 대상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경우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가 중독의 문제를 치료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이 이사장의 조언이다. 그는 "무언가에 중독이 되면 관련 자극만 와도 도파민이 분비돼서 갈망이 생긴다"며 "약물을 통해 그걸 막아줘야 하는데, 현재는 알코올과 관련해서 두 가지 약물만 승인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마약, 인터넷, 도박 등과 관련한 갈망 욕구를 통제할 약은 없다는 얘기다. 또 "보통 우울이나 불안이 심할 경우 이를 벗어나고 싶어서 다른 것에 중독될 위험이 높아진다"며 "일반 정신질환을 조절해서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고 전했다.
중독 예방과 관련해선 "결국 도파민을 분비시킬 옵션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만들라는 얘기다. 술도 단순히 마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맥락을 접할 수 있는 술이 더 낫다는 것. 그는 "단순히 강하고 빠르게 혈중알코올농도를 올리려다보니 소주를 찾는데, 페어링된 음식, 향, 색 등 다양한 맥락을 접할 수 있는 술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만연한 중독의 원인과 치유가 어려운 이유가 그 책임을 과하게 개인에게 지우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중독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려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한다고 힘줘 말했다. 무엇보다 미래세대인 청소년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었다.
사실 성인은 이미 뇌 가소성이 떨어져서 크게 상관없지만, 청소년은 달라요. 신경발달학적인 중독으로 빠질 위험이 있어요. 청소년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중독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라는 차원과 시선으로 봐야 합니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 터치유의 '에코 라디오' Ep.2 "감각에 집중하세요"…분노가 나를 삼킬 때 다시 듣기(https://touchyou.hankookilbo.com/v/20230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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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유'가 한국일보의 디지털 프로덕트 실험 조직인 'H랩(Lab)'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탐사선 H랩은 기존 뉴스 미디어의 한계선 너머의 새로운 기술과 독자,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 가능성과 만나려 합니다. H랩 시즌1 프로젝트인 '터치유'는 평범한 이웃의 비범한 고민 속, 마음 돌봄 이야기를 오디오 인터랙티브로 집중도 높게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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