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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교육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더 낫다

입력
2023.05.01 04:30
25면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교육개혁: <4> 교육 망치는 교육감 선거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선거 관계자가 7장에 달하는 모의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선거 관계자가 7장에 달하는 모의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 해 97조원을 다루는 감시받지 않는 권력
2007년 이후 비리 교육감 11명 사법 처리
교육감 친위 세력만 배불리는 제도 정비해야

교육감을 선출해서 시행하는 지방교육자치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하여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되는 제도이다(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제1조). 교육감 선거는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여야 하나, 실제는 그러하지 못하다. 필자가 2021년 교육감 선거 문제점을 다룬 책을 내며 ‘교육감 선거, 교육이 망가지는 이유’라는 제목을 단 이유다. 주민 대다수가 관심 없어 알지 못하고 정책결정자도 외면하기에 여태껏 방치되고 있다.

‘깜깜이’는 교육감 선거와 거의 동격인 수식어다. 관심이 없어 유권자가 알지 못하는 교육감 선거는 전문가에게조차도 생소하다. 따라서 유권자의 역할은 미미하고 후보자와 친위 세력만 있는 그들만의 선거다. 선거가 이러니 당선 후 임기 4년도 깜깜이로 지나간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법률적으로 정당이나 정치가 배제된 교육감 선거는 교육적이고 정치 중립이어야 하나 현실은 아니다. 말로만 정당 관여 금지이지 그 외의 것은 더 정치적이고 진영 편 가르기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당선만을 위한 단일화, 볼썽사나운 네거티브 싸움, 시·도지사보다 더 쓰는 과도한 선거비용, 당선 후 그네들만의 선거 전리품의 독점 등 위·불법 행위가 난무한다. 실제 2007년 이후 당선된 교육감 중에 11명이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측근들의 감옥행도 많다. 교육감 선거를 범죄자 양산소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교육감 선거, 나아가 교육자치가 원래 지향했던 모습이 이런 식은 아니었다. 해방 후 곧바로 구성된 미군정청이 발표한 교육자치는 1949년 제정된 교육법으로 구체화하였다. 이는 미국의 교육자치를 본떠 적용한 형태였다. 제도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한 오천석 당시 문교부 장관은 민주주의와 교육의 자주성을 위해 그가 배운 미국의 교육자치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미국의 풀뿌리교육자치는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이주민의 현실적 필요로 시작되었다. 주민이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기 위해 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교육자치가 지금도 1만3,500여 개에 이르는 학교교육구(local school district)를 중심으로 촘촘히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 교육은 주(state) 정부의 권한 사항이기에 교육의 최고 책임자로 주 교육감을 임명(38개주)하거나 선출(12개주)하지만, 학교교육구라는 특별 지역 단위가 미국 교육자치의 핵심이다. 교육구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 지역 교육감이 임명되는데 선발의 고려 기준은 교육에 관한 전문성과 역량이다. 우리가 모방한 제도지만 그 운영은 매우 다르다.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교육자치는 법령상의 제도뿐이었고 1991년에야 지방자치와 함께 시행되었다. 지방자치와는 달리 시·도에서만 교육감을 선출하여 해당 지역의 교육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게끔 했다. 처음에는 교육위원회에서, 1997년부터는 선거인단을 통해서, 2007년부터는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미국의 교육자치는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핵심이다. 동시에 투표를 통해 교육재정을 재산세 일부로 부담한다. 주민 스스로 권한과 책임을 함께하는 교육자치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자치는 교육감을 선출하는 것으로 교육자치가 자동 실행되는 것을 상정한다. 그러나 그 선거에 주민은 관심 밖이고 전문성과 역량의 검증 없이 누군가가 교육감이 된다. 이게 민주주의일 수 없고, 이런 선거가 민주주의 꽃일 수는 더더욱 없다. 관심, 참여, 재정적 부담, 그리고 임기 중 감시와 견제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실천과제인데 우리에겐 없다.

교육감 선거가 문제니 이제 러닝메이트제를 하자고 한다. 또 다른 시행착오 예고다. 교육자치가 실패한 원인은 그 제도가 우리에게 맞지 않고 주민의 참여 의지와 필요가 없어서다. 집요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의 노력 없이 하릴없이 당선된 교육감만으로 교육자치가 될 거라는 기대는 연목구어다.

유권자가 관심 없는데 2,000억 원을 낭비하는 교육감 선거를 방치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 사무인 교육의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도가 가장 높은 선거는 대통령 선거다. 1991년 이전처럼 대통령이 그 권한과 책임으로 교육감을 임명하는 것이 교육감 선거보다 민주적이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참여와 심판을 할 수 있고, 인재 발굴을 통해 전문적 자격과 역량을 갖춘 교육감 임명도 가능하다. 민주주의와 저출산 및 고령화,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글 싣는 순서-교육개혁

<1> 한국 교육의 근본문제 (조벽)
<2> 디지털문명에 걸맞은 교육 (염재호)
<3> 시험이 바뀌면 한국도 바뀐다 (이혜정)
<4> 교육 망치는 교육감 선거 (박융수)
<5> 대학입시, 어떻게 해야 하나 (배상훈)
<6> 대학 총장 직선제는 답이 아니다 (전호환)
<7> 지역대학이 융성해야 선진국이다 (김종영)
<8> 글로벌 스탠더드- 9월 학기제 (김도연)
<9> 노동ㆍ연금개혁 그리고 교육개혁 (김용학)


박융수 전 서울대 사무국장·전 인천광역시교육감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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