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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기자도 놀란 한국의 ‘기밀 유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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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기밀 문건 유출 사태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건 정치적 판단 때문인가? 한국 내에선 정부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나.”
15일 베트남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시작을 앞두고 한 미국 기자가 물었다. 한국 정부도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조심스레 대응하는 이유가 뭔지 한국 기자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했다.
‘뭐라고 답하지? 한미 관계 악영향 우려? 눈치 보기? 위조인지 아닌지 몰라서?’ 한참의 고민 끝에 겨우 변명 아닌 변명을 꺼냈다. “한국도 시끄럽다. (미국의) 도·감청 자체를 문제 삼는 지적도, (제3자의) 문건 조작을 의심하는 시선도, (한국의) 대응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정부로선 사실 관계 확인이 덜 된 상황에서 공식 입장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이었지만 말이다.
미국 기자는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잘 납득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뭔가를 더 얘기하려 했으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블링컨 장관이 회견장에 들어온 탓이다.
짧은 대화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사건 진원지에서조차 의아해할 만큼, 한국 정부 대처가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서다. ‘내 답변이 너무 피상적이었나’라는 생각도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실제 ‘문건이 위조됐다' ‘미국이 악의를 갖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없다’는 한국 정부 당국자의 말은 마치 미국 정부 관계자 해명처럼 들린다. ‘동맹 훼손’ ‘국익’을 운운하며 되레 화살을 내부로 돌리는 발언은 바깥에서 뺨 맞고 안에서 화풀이하는 꼴이다.
미국 외교 인사조차 “사안을 심각하게 본다”는데, 오히려 도청당한 국가가 앞장서 면죄부를 주려 하니 외국인이 보기엔 이상할 법도 하다. 그날의 대화 뒤에는 “국가 간 문제인데, 적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은 요구해야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시계를 되돌려 그때 이렇게 답했으면 어땠을까.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배려심이었다.” 아니,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 내 울타리 안을, 가장 내밀한 공간을 무단 침입했는데 따져 묻지도 않은 이유를 찾으려니 골머리가 아프다.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대통령실처럼 ‘국익’을 생각해 차라리 입을 닫아야 했나. 아니면 이국 땅에서 그런 질문을 받게 된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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