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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망가졌다'는 정부가 말하지 않는 것

입력
2023.04.19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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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1분기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지급 방안을 두고 머리를 싸맨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낭보가 날아왔다. 기재부 세제실에서 전한 반가운 소식은 "세수가 심상치 않아요". 계획보다 많이 걷힌 국세 수입을 의미하는 초과 세수 예상액이 10조 원대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 확정 직전인 5월 초 53조 원까지 불어났다.

역대급 세수 호황은 사상 최대 규모인 62조 원 추경의 토대였다. 뒤늦은 질문 하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남아도는 세금을 나랏빚 갚기에 모두 썼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문재인 정부 집권기 동안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뛴 국내총생산 대비(GDP) 국가채무비율을 낮췄을 텐데.

현 정부는 당시 초과 세수 가운데 지방교부금 몫 23조 원을 뺀 30조 원 중 7조5,000억 원을 국채 상환에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가 남은 초과 세수 22조5,000억 원을 추경에 쓸 수 있었던 명분은 뚜렷했다. 코로나19 기간에 제 가게 하나를 유지하기도 벅찼던 자영업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건 국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1년 지난 일을 다시 꺼내보는 이유는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 때 재정이 망가졌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고 있어서다. "600조 원이던 국가채무가 지난 정부에서 400조 원 늘었다.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떠넘긴 건 미래 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한 18일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말은 맞다. 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400조5,000억 원이었던 총 지출은 2022년 607조7,000억 원으로 올랐다. 5년 만에 연간 정부 예산이 207조 원 불어난 것. 공교롭게도 재정을 진보 정권보다 깐깐하게 쓰는 보수 정권기(2008~2017년) 9년 사이 딱 이만큼(205조 원) 정부 예산 규모가 커졌다. 이 차이는 윤 대통령 지적대로 국가채무,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졌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코로나19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랏빚이 급속히 늘어난 주요인은 코로나19 기간 실시한 7차례 추경이다. 이 추경은 재난지원금 지급, 백신 구입, 방역 지원 등에 쓰였다. 2020년 –0.7%로 꺾였던 경제 성장률이 2021년 4.1%로 반등하는 등 효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허투루 썼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 세계서 가장 빠른 나랏빚 증가 속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이를 공격하는 데서 나아가 코로나19 때 집권했다면 어떤 재정 정책을 폈을까 생각해 봤으면 한다. 전 정부를 이해하는 동시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재정을 함부로 썼는지 검증하는 차원이다. 재정 정책을 놓고 문재인 정부 이후 더욱 심화한 진보-보수 간 끝장 대치를 완화하는 목적도 있다.

"한국에서 진보, 보수의 경제 정책은 한 끗 차이"라던 한 국무위원 발언이 떠오른다. 재정 정책에 적용하면 여야가 확장이니 긴축이니 추구하는 방향은 달라도, 현실에선 경기 여건에 맞춰 나랏돈을 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분석이 무색하게 확장 아니면 긴축을 앞세우는 전·현직 정부가 되새길 말이다. 결국 경제에 필요한 건 상황에 따라 늘렸다 조이는 '고무줄 재정'이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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