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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처박혀 막말 퍼붓는 오빠...왜 이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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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는 부모님, 오빠와 살고 있는 고3 학생입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오빠에게 받은 상처가 큽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가족들과 싸우려고만 하는 오빠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오빠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 자영업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가 어린 오빠와 저를 돌봐주셨어요. 그때는 둘이 의지하며 같은 침대에서 잘 정도로 사이가 좋았어요. 그런데 저의 초등학생 시절 오빠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오빠는 저와는 물론이고 부모님과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어요. 특히 아버지와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어요. 아버지와 오빠가 고성을 지르며 싸울 때 엄마는 아무런 중재를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나중엔 어머니도 분에 못 이겨 물건을 던지면서까지 오빠와 싸웠습니다. 중간에서 말리는 건 늘 저였어요. 어린 마음에 무섭고 겁이 나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저와 부모님의 사이도 악화됐어요. 그때는 온 가족이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오빠와 눈만 마주쳐도 싸우고 부모님에게도 소리치고 비속어까지 할 정도로 엇나갔어요. 부모님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을 입에 올리며 다툴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는 가족들을 보면서 우울했고 혼자 숨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빠가 유학을 떠나면서 평화가 찾아왔어요. 오빠가 집에 없으니 싸우는 횟수가 줄었고, 그러면서 저와 부모님과의 관계도 서서히 회복됐어요. 세 가족이 여행을 자주 가고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집안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많이 싸웠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요.
문제가 생긴 건 오빠가 귀국하면서부터입니다. 오빠는 유학 생활을 불성실하게 했어요. 학점이 부족해 고등학교 졸업을 못하고 부모님에겐 거짓말로 돈을 받아갔죠. 돌아와서는 군 입대도 미루고 방에만 처박혀 있어요. 사람도 전혀 만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아요. 이런 오빠와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던 악몽이 시작됐어요. 오빠와 잘 지내려고 노력하다가도 오빠가 가족들에게 모진 말을 하며 돌발 행동을 할 때 화를 참지 못했어요. 싸운 뒤 풀고 싶어서 대화를 시도하지만 오빠는 반응이 없습니다.
최근엔 오빠가 밥을 먹다가 어머니에게 반찬투정을 했고, 작은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면서 어머니가 순간적으로 오빠의 목을 조른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일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이지만 한편으로 어머니 입장도 이해합니다. 저 역시 오빠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으니까요. 집에만 있는 오빠가 언제나 화난 상태이고 대화도 통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불안함과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고3이 되면서 이런 상황은 저를 더욱 옥죄어 왔어요.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오빠의 존재 자체가 저에게 스트레스라 입시에 집중이 안 됩니다. 오빠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난폭함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화장실의 신발에 물이 차 있다든지, 바닥에 물기가 있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며 수시로 분노를 분출합니다. 편하게 쉬어야 할 집에서 저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긴장 상태로 살고 있어요. 오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걸을 때도 최대한 조용하게 걸어요. 온 가족이 오빠 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요.
오빠는 왜 화가 이렇게 많을까요. 저와 부모님은 오빠와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까요.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임선우(가명·19·학생)
선우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 주기는커녕 걸림돌이 되는 오빠를 보면서 얼마나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선우양 마음속에는 오빠에 대한 원망과 억울한 감정이 오랜 시간 쌓여 있을 거예요. 선우양의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자신의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봅시다.
남매가 같이 살며 마음이 안 맞을 때도 있고 다툴 때도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죠. 그런데 선우양과 오빠 사이 문제는 단순한 오해나 갈등으로 생긴 문제는 아닌 걸로 보여요. 가족 내 쌓인 불통 문제가 사춘기를 지나며 증폭돼 폭발한 것이죠. 오빠가 사춘기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고 했지요. 사연을 읽어 보면 오빠는 이미 그 이전부터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아동기와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치면서 부모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해요. 그 과정에서 자긍심을 갖기도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죠. 선우양의 오빠는 사춘기를 기점으로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부모님에게 혼이 났을 거예요. 특히 아버지가 오빠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화내고 다그치는 데 관계의 대부분을 할애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오빠의 돌발 행동이나 자녀 간의 다툼을 보고도 개입을 하지 않은 채 지나갔고요. 결과적으로 공감적 소통도, 제대로 된 훈육도 없었던 것이죠.
당시 오빠의 행동과 지금의 모습이 문제가 있는 건 맞아요. 행동의 교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특히 부모와의 대화가 필요한데 그 대화의 기초가 되는 지지적인 상호작용이 돼 있지 않아요. 사춘기 시절 부모님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길 기대한 오빠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부모님이 원망스럽게만 느껴졌을 거예요. 자기 편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채로 지금까지 혼자 방치돼 온 것이죠. 선우양의 오빠는 이제 성인이 됐지만 내면엔 아직 사춘기 때 방황했던 그 아이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오랜 시간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오빠는 겉으로는 분노를 표현하지만 실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그 무력감이 다시 분노로 표출되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요. 안타까운 점은 애초에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쌓는 것이 오빠의 몫이 아니라 부모의 역할이라는 점입니다. 부모가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때 자녀는 비로소 부모와 소통하기 시작하지요.
선우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빠는 화를 분출하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선우양은 삭이는 식으로 분노를 억눌러 왔어요. 물론 부모님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셨겠지만, 선우양의 성장 과정에서도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특히 자녀들이 다툴 때 각각 공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 자녀들은 서로 불만과 질투심을 더 키워갈 수 있어요. 사춘기에 선우양이 겪은 내면의 갈등은 단기적으로 볼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 다툼이 잦았던 경험으로 인해 독립을 해야 할 시기에도 가족이 화목한 것에 모든 우선순위를 두게 될 수 있어요. 가족의 화목을 목표로 내가 희생하고, 내 꿈을 포기하게 되기도 하죠.
지금이라도 진솔한 내 감정을 직면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랫동안 회피해 왔던 자신의 감정과 맞닥뜨려야만 합니다. 오빠를 변화시켜 내 마음의 괴로움을 해결하거나 오빠와 갈등을 겪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입시라는 중요한 문제를 목전에 놓고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당한 상황을 참고 수용하며 가족 문제에 골몰하게 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평화로운 가족에 대한 소망 이면에 있는 부모님에 대한, 오빠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들여다보세요.
지금은 가족의 화합보다 가족과의 분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가족과의 인연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집중하는 대상을 바꾸라는 것이지요. 오빠의 문제나, 부모와의 관계보다는 선우양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 그것이 해묵은 갈등을 해결해 갈 수 있는 단초입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일은 입시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오빠의 돌발 행동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선우양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일을 했으면 합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마음의 주체가 돼 결정하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부모님은 오빠와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요,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라는 마지막 질문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선우양의 오빠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개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볼 것을 권유합니다. 지금까지도 상처를 주고 있는 가족 간 불화도 회복해야 하겠지요. 다만 가족 문제는 결국 개개인이 각자 삶의 주체가 되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가족과 상관없이 선우양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에 꾸준히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counseling)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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