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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파도는 앞선 파도를 딛고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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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4월 21일,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유명한 바 ‘줄리어스’에서 청년 4명이 스스로 게이임을 밝히고 술을 주문했다. 그 일상적인 일이 당시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될 만큼 놀라운, 성소수자가 계획적으로 일으킨 최초의 불복종 운동이었다.
성소수자들이 술집과 식당, 나이트클럽에서 예사로 쫓겨나던 시절이었다. 법적 근거도 없었지만, 동성애자에게 술을 팔면 ‘풍속 저해 행위’(disorderly conduct)로 적발돼 벌금을 내거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 일쑤였다. 그걸 빌미 삼아 경찰은 업주에게서 뒷돈을 뜯고, 마피아 영업장들이 성소수자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가게 입구에 ‘게이 출입 금지’ 푯말을 단 곳도 있었고,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바를 마주 봐야 한다”는 완곡한 안내판을 설치한 곳도 있었다. 다른 남성에게 추파를 던지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뉴욕 최초 게이 인권운동 단체 ‘매터신 소사이어티’ 회장 딕 라이치(Dick Leitsch, 1935~2018) 등 회원 4명은 ‘풍속 저해’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으로 저 ‘사건’을 벌였다. 바텐더가 술잔을 손으로 덮으며 서비스를 거부하는 사진과 함께 그 사연이 보도된 뒤 라이치 등의 공식 항의에 뉴욕주 주류당국은 동성애자에 대한 서비스 거부 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주 인권위원회도 서비스 거부가 인권 침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후로도 반인권적 관행은 근절되지 않았고, 3년 뒤 스톤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처럼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의 배경에는 66년 라이치 등의 이른바 ‘Sip In’이 있었고, 50년 설립된 매터신 소사이어티와 55년의 레즈비언 단체 ‘빌리티스의 딸들’ 등의 활동이 있었다. 스톤월항쟁 이후 출범한 전투적 게이 인권운동단체 ‘게이해방전선(GLF)’ 등은 라이치 등의 비폭력 노선을, 적어도 당시에는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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