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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눈치 보며 시작했던 축구…이젠 유럽 축구보다 재밌다고 해요"

입력
2023.04.18 13: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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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5년 역사 우승만 50차례 송파구여성축구단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주장 주은정(왼쪽)씨와 김정희씨가 훈련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주장 주은정(왼쪽)씨와 김정희씨가 훈련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정희, 다리 더 올리고. 은정, 가볍게 가볍게.”

봄기운이 완연한 14일 금요일 오전.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 김두선(54) 서울 송파구여성축구단 감독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정희(64)씨는 열 살이나 어린 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다리를 조금 더 높이 들며 몸을 풀었다. 주장이자 골키퍼인 주은정(54)씨도 '조카뻘'인 20대 선수들과 패스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운동장 달리기부터 패스·전술 훈련, 실전 훈련까지 차례대로 해내는 여성들의 기합이 여느 프로 축구팀 못지않았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피치 위를 뛰고, 골대를 향해 슛을 날리는 이들은 바로 '전국 최강' 송파구여성축구단이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여성 축구ㆍ풋살팀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1998년 창단해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송파구여성축구단의 클래스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전국여성축구대회와 서울시 대회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만 50차례가 넘는다.

30여 명 팀원들은 연령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창단 멤버이자 팀의 최고령인 김정희씨와 주은정씨가 있다.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창단 멤버이자 팀 내 최고령인 김정희(가운데)씨가 훈련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창단 멤버이자 팀 내 최고령인 김정희(가운데)씨가 훈련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여자들 축구라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한번 직접 보세요

창단 당시 38세로 동사무소(현 주민센터)에서 책을 빌려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는 김씨는 “동장님이 '키가 크다'는 이유로 새로 생긴 축구단에 무조건 가라고 했다"며 축구와 창졸간에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밝혔다. 중간에 그만둔 사람도 많았지만 김씨는 금세 축구에 푹 빠졌다. 당시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느냐'는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더욱 열심히 했다고 한다. 김씨는 “남편한테 책잡히면 축구를 못 할까 봐 셔츠 다리미질도 더 칼같이 했다”고 웃었다.

유도 선수 출신인 주씨는 우연히 모집 공고를 보고 가입했다. 축구가 너무 좋아 임신 8개월에도 피치를 누볐고, 아예 집을 강서구에서 송파구로 옮겼다. 주씨는 “여자들이 축구한다고 하면 공 하나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우당탕 골을 넣는 모습들을 상상한다”면서 “하지만 직접 경기를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바뀔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씨 가족들도 경기를 직접 본 후 여자축구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고 한다. 김씨는 “아들이 대회 때 응원 왔는데 '유럽축구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며 웃었다. 이제는 남편과 자녀들은 물론, 며느리와 사돈도 ‘축구선수’ 김씨를 응원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축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주 3일 2시간씩 꾸준히 훈련 중인데 '걷기 운동' 정도론 성이 차지 않는단다. 김씨는 “주위엔 몸과 마음이 힘들어 정신적 신체적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갱년기인지도 잘 모르고 지나갔다”면서 “혼자 하는 운동이었으면 이렇게 오래 못 했을 것 같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고 싶어 몸 관리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씨는 단체 운동으로서의 매력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 컨디션이 조금 안 좋더라도 팀을 위해 웬만하면 출석해야 한다. 또 실수나 부족한 점이 나오더라도 서로 감싸주고 보완한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선수들이 훈련에 앞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4일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송파구여성축구단 선수들이 훈련에 앞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엄마뻘 최고참에도 '언니'…서로가 멘토이고 멘티

최고참과 막내의 나이 차는 '엄마와 딸' 수준이지만 호칭은 언제나 '언니'다. 김씨는 “자기 엄마보다 내 나이가 더 많을 텐데도 '언니'라고 불러준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나 역시 자녀 문제에 답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서로가 멘토이자 멘티다”고 설명했다.

근육 감소? 이들에게 그런 걱정은 없다. 젊은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축구 훈련이 없을 때도 개인 근력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김씨는 “농담처럼 70대까지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까지 축구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4월 16일이 팀 창단일인데 공교롭게도 지난 16일 서울시장기 대회에서 우승하며 창단일에 두 배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주장 주씨는 “우리 팀이 25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전용 축구장과 체력 단련장까지 마련해준 송파구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여성 축구팀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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