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저소득국의 굶주리는 라마단
코로나 종식으로 야외 행사는 증가
메카 순례 규모도 과거 수준 회복
지난 3월 22일(한국 기준) 이슬람 세계의 금식성월인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의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낮 동안 물을 포함한 일체 음식을 끊어야 하며, 흡연 등 육체를 즐기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라마단은 일정 기간 세속의 편안함과 과욕을 내려놓고, 유일신 알라의 뜻을 새기는 성스러운 자기 정화의 시간이다.
라마단은 배고픈 자,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돌아보며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추구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용서와 관용을 실천하는 너그러움을 베풀 때 알라께서 더 많은 보상을 준다고 믿는다. 중동 국가에서 흔히 라마단 동안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죄수를 석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번 라마단을 앞두고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대통령은 1,025명의 죄수를 풀어줬다.
유난히 2023년 중동의 라마단은 예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우선 걸프 산유국을 제외하고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 튀니지 등 여러 중동 국가가 처한 경제난이 라마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으며 서민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 외환시장 불안정으로 2013년 1달러에 7이집트 파운드(EGP)였던 환율이 현재 1달러에 30EGP를 넘어서고 있다.
경제난으로 서민들이 라마단 식단을 차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해가 뜨기 전까지 통상 두 번의 식사를 한다. 해가 진 직후에 하는 식사를 '이프타르', 해뜨기 전 먹는 것을 '수후르'라 하는데, 가까운 친지 혹은 이웃들이 종종 한 집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즐긴다.
이 때문에 라마단 기간 식자재 수요는 오히려 증가한다. 이프타르 식단은 기름진 육류를 함께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올해 라마단에는 살인적 물가 탓에 예년에 비해 고기를 사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시리아의 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4월 13일 자 아랍어 '알 아라비'지는 "라마단 기간 고물가가 시리아인들의 삶을 힘겹게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부분의 시리아 사람들이 이번 라마단에 고기 먹는 것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2023년 라마단의 또 다른 색다른 분위기는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조심스레 열리던 각종 모임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다. 이슬람권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라마단을 맞이한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교부는 3월 24일 박진 장관의 주재하에 이슬람 문화권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이프타르 만찬을 열었다. 코로나로 3년간 중단되었다 재개된 외교부의 이프타르 만찬에는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의 외교단을 비롯하여 관련 학계와 언론계를 포함, 국내외 인사 170여 명이 참석하여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라마단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처럼의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이 외에도 팬데믹이 끝나면서 라마단 기간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순례하려는 무슬림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슬람의 성지 순례는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이슬람력 12번째 달 행하는 대순례인 핫즈와 연중 언제든 가능한 소순례인 우므라로 구분된다. 라마단에 우므라를 하면 더 큰 상급이 주어진다고 믿는 무슬림들은 코로나 유행이 끝나자 우므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라마단 기간 우므라를 예약하는 플랫폼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되었다. 또한 누구든지 원하는 자에게 야외에서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는 자선 이프타르 만찬이 재개되었다. 사뭇 다른 분위기 속 2023년 라마단은 이제 곧 끝이 난다. 며칠 남지 않은 기간만이라도 모든 무슬림이 라마단 무바라크(축복의 라마단)를 보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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