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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별 상황] 50초가 기시다 구했다...폭발물, 바닥 구르다 뒤늦게 "펑"

입력
2023.04.16 18: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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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 유세 현장서 테러
등 뒤 1m 인근에 폭발물 낙하
경호원·어민 대처로 무사 피신
일정 강행하며 "폐 끼쳐 죄송"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의 한 항구에서 유세 연설을 하려는 가운데 폭발물이 던져진 현장에서 잔해가 남아 있다. 와카야마=EPA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의 한 항구에서 유세 연설을 하려는 가운데 폭발물이 던져진 현장에서 잔해가 남아 있다. 와카야마=EPA 연합뉴스


◆15일 오전 11시 17분: 평화로운 어촌, "테러 기미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 항구에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하기 위해 도착했다. 경호원과 제복을 입은 경찰관 10여 명에게 둘러싸여 차량에서 내린 기시다 총리는 지역 어민들이 잡은 생선과 새우를 맛보고 “씹는 맛이 있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평화롭던 풍경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시다 총리를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물 테러가 발생하면서다. 기시다 총리는 무사히 대피했지만,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사망 당시를 떠올린 일본인들은 치를 떨었다.

아사히신문, NHK방송 등 일본 언론 보도와 현장 관계자 증언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15일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 항구를 찾아 지역에서 난 해산물을 시식하고 있다. 와카야마=교도 연합뉴스

15일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 항구를 찾아 지역에서 난 해산물을 시식하고 있다. 와카야마=교도 연합뉴스


◆ 오전 11시 25분: 곧바로 터지지 않은 폭발물...'아찔'

사이카자키 항구는 바다를 따라 경사면에 건물이 들어선 지형 때문에 ‘이탈리아의 아말피’에 비유되는 미항이다. 해산물 시식 후 수십 미터 떨어진 연단으로 향하는 기시다 총리에게 오하나 마사토 와카야마 시장이 이를 설명하려 했다. “아말…(피)”까지 말한 순간 일이 터졌다.

길쭉한 은회색 원통형의 물체가 날아들어 기시다 총리의 등 뒤 약 1m 지점 바닥에 떨어졌다. 기시다 총리의 연설을 기다리던 200여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던진 것이었다. 기시다 총리와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약 10미터. 텀블러와 유사하게 생긴 소형 폭발물은 곧바로 터지지 않고 하얀 연기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놀라서 뒤를 돌아 본 기시다 총리는 무방비 상태였다. 경호원들은 폭발물을 가방과 발로 급하게 밀어냈다. 방탄막을 펼쳐 기시다 총리를 가린 채 대피시켰다.

15일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의 한 항구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원통형 물체가 근처에 떨어지자 돌아보는 모습이 현장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에 담겨 있다. 와카야마=EPA 연합뉴스

15일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의 한 항구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원통형 물체가 근처에 떨어지자 돌아보는 모습이 현장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에 담겨 있다. 와카야마=EPA 연합뉴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50대 어민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검은 뿔테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기무라 류지(24)였다. "제압 당시 또 다른 은색 통을 손에 들고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었다”고 NHK는 전했다. 새우잡이 어민 데라이 마사미(68)도 합세해 기무라의 다리를 잡았다. 그제서야 경찰과 경호원들이 몰려들어 기무라를 체포했다.

그로부터 50초 후 "펑"하는 폭발음이 울렸다. 기시다 총리를 향해 던진 폭발물이 바닥에서 뒤늦게 터진 것이었다. 주황색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기시다 총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피한 터라 큰 피해는 없었다. 일본 언론은 경찰관 한 명과 어민 한 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기무라는 두 개 이상의 폭발물을 갖고 유세 현장에 도착했다. 하나는 던졌지만 50초 늦게 터지고, 하나는 던지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테러에 실패했다. 폭발물은 통 안에 화약을 넣어 바깥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쇠파이프 사제 폭탄'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기무라가 불을 붙여 기시다 총리를 향해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방에는 폭발물로 보이는 다른 통 여러개와 칼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기 전문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폭발음이 작았던 것을 보면, 화약량이 적고 위력도 세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도 “화약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살상력이 달라지는데, 대참사가 되지 않았던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전했다.

1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현장 시찰을 마치고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폭발음을 낸 물체를 던진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와카야마=교도 연합뉴스

1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현장 시찰을 마치고 연설을 시작하기 직전 폭발음을 낸 물체를 던진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 와카야마=교도 연합뉴스


◆낮 12시 40분: 무사 대피한 기시다 "민폐 끼쳐 죄송"

“조금 전 사이카자키 연설장에서 큰 폭발음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경찰이 조사하고 있지만, 심려와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항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와카야마현 경찰 본부로 피신한 기시다 총리가 JR와카야마역 앞에 모습을 드러내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의 만류에도 기시다 총리는 "선거 중"이라는 이유로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가 전했다. 보궐선거는 이달 23일 열린다.

경호 인력에게 둘러싸여 유세차에 다시 오른 기시다 총리는 “우리는 소중한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선거를 꼭 여러분과 힘을 합쳐 끝까지 해내겠다”고 20분간의 연설에서 힘주어 말했다. 이후 지바현으로 이동해 우라야스시와 이치카와시에서도 유세를 이어갔다. 지바현은 폭발물 테러를 계기로 경비를 강화했다. 연단 주위를 경찰관이 에워쌌고 청중 앞에는 기동대원들도 세웠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15일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 항구에서 폭탄물 테러를 겪은 직후 와카야마역에서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서 손을 흔들고 있다. 와카야마=UPI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15일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 항구에서 폭탄물 테러를 겪은 직후 와카야마역에서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서 손을 흔들고 있다. 와카야마=UPI 연합뉴스

◆오후 8시 38분: 기시다 "선거 유세는 계속돼야 한다"

도쿄로 이동해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다듬은 기시다 총리는 총리관저로 복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거리 유세 현장에 계속해서 설 것”이라는 의지를 다졌고, 테러범을 잡는 데 공을 세운 어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했다. 기시다 총리는 16일에도 선거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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