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당이 이국 땅에서 지키고 있는 것들

입력
2023.04.15 04:30
22면
일본 도쿄 신주쿠 한정식집 '대한민국'.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도쿄 신주쿠 한정식집 '대한민국'. 연합뉴스 자료사진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삶의 기본인 의식주, 그중에서도 먹거리 문제가 가장 크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 며칠이 지나면 현지식만으로 버티기 힘든 자신을 본다. 그럴 때 무작정 찾아 나선 발걸음에 눈에 띈 한국식당, 그때의 기분이 어떠한가? 재료도 기대한 맛도 다를 수 있지만 무슨 상관이랴. '밥심'은 말 그대로 남은 여행에 힘을 준다.

그런데 타지에서 만난 한국식당의 이름에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간판을 보자마자 정체성을 알아차리도록 '한국적 표식'을 붙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들이 많이 쓰이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의 바다에서 식당 이름을 찾아본다. 놀랍게도 중앙아시아부터 서유럽, 아프리카까지 큰 도시 대부분에 한식당 정보가 나온다.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응당 '한국'이다. '한국인, 코리아나, 한국집'과 같이 쓰인다. 그리고 '서울식당, 서울집, 서울푸드, 서울김치' 혹은 '한강, 진고개' 등 세계 곳곳에 '서울'이 보인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지만, 한민족에게 '마음의 수도'인가 보다. '가야, 고려, 백제, 서라벌, 신라, 한양' 등 옛 이름들도 향수를 자극한다.

다음으로 전통을 강조하는 '경복궁, 아리랑', 그러한 자부심을 담은 '명가'와 같은 예가 있다. '기와, 옹기, 싱글벙글, 토담'과 같은 말은 소박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마실, 만남, 모두, 부르네, 사랑, 소풍' 등에서는 작명의 이유를 안 물어봐도 알 만하다. 바로 공동체이다. 그 모임의 구성원이었을 '삼촌네, 아저씨, 오빠, 이모네', 타향에서 그리워했을 '바다, 나무'도 있다.

식당 이름으로서 먹거리 소재를 놓칠 수 없다. 한류를 탄 '대장금'을 비롯하여, '고깃집, Mogo(먹어), 수라상, 식객, 쌈장' 등이 그것이다. '분식(BUNSIK), 한식(HANSIK)' 등은 이제 '치맥'과 함께 우리말 그대로 상호가 되어 있다. '오세요(Oseyo), 가자(Gaza)'를 보면 우르르 따라 들어가고 싶다.

국호를 보면 그 나라의 성격을 안다는데, 그보다 더한 정체성을 식당 이름에서 본다. 떠나 있는 한국인 공동체가 붙인 식당 이름에 한국의 전통이 있고, 역사가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고, 생활문화가 살아 있다. 이름이 마치 이국 땅에 세워둔 장승 같다. 검색 창을 닫고 창밖을 내다본다. 무수한 이 땅의 간판들이 보인다. 여기가 오히려 외국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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