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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신화를 기대한다

입력
2023.04.15 04:30
11면

<113>여성에게도 공정하게 개방돼야 할 '꿈의 직장'

현대자동차는 1985년 중형차 쏘나타를 출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대자동차는 1985년 중형차 쏘나타를 출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내가 처음 타 본 승용차였다. 내 아버지의 생애 첫 자가용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운전을 하진 않았다) 주말마다 직접 세차를 하며 그 차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그것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였으니, 현대자동차가 이미 미국에 진출을 했을 때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국가적으로는 눈부신 경제성장의 상징이었고, 한 가족이 그 차를 소유하는 것은 중산층 진입의 증표였다. 둘 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에서 1968년 설립 당시 연간 3,000대 미만의 자동차를 조립했던 현대자동차가 어떻게 해서 2015년 즈음에는 GM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숫자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유의 성공 스토리에는 영웅적인 한 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그는 현대자동차의 노동자, 엔지니어, 연구원 그리고 전문경영인 모두가 현대자동차의 신화를 이끈 주역들이었음을 정당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한 명의 영웅적 기업가가 아니라 다수의 다양한 노동자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에서 여성의 자리는 없어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공개채용을 시작한 이후 생산 공장 기술직 노동자 공개채용에서 단 한 번도 여성을 뽑은 적이 없다.

지원자격: 고졸 이상, 연령과 성별 제한 없음

2023년 3월 2일, 10년 만에 발표한 현대자동차의 기술직 신입사원 공개채용 공고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2023년 400명, 2024년 300명의 규모도 작지 않은 데다 고등학교 졸업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현대자동차는 높은 임금과 정년이 보장되는 몇 안 되는 꿈의 직장이기 때문이다.

공고에서 현대자동차는 지원자격에 연령과 성별의 제한이 없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같은 여성 노동 단체는 우려를 표한다.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기술직 공개 채용에서 여성을 뽑은 적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회사가 꿈의 직장은커녕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했던 설립 초기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해고되었다. 그리고 현재 현대자동차에는 500여 명의 기술직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와 함께 동일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사내하청 소속으로 일하다가 2010년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공장의 상황에 따라 추천으로 입사했다. 이마저도 사내하청 남성 노동자들이 먼저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에야 여성들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현재 현대차 한국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에 불과하며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여성 노동자 비율이 36.2%인 것과 견줘봐도 큰 차이가 있다.

OECD회원국 성별임금격차 순위. 그래픽=강준구 기자

OECD회원국 성별임금격차 순위. 그래픽=강준구 기자

더 이상 남성 혹은 여성만의 직업은 없지만 '성별 간 직종 분리'는 여전히 현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특히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큰 주요한 이유이다. 남성이 주로 일하는 직종은 급여가 높고 정년이 보장되며 각종 복지혜택이 뒤따르는 반면 여성이 주로 일하는 직종은 급여가 낮고 짧은 주기로 계약을 반복하며 복지혜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성 1인이 생계부양자인 가족은 점점 희귀해져 가고 있지만 남성은 아직도 한 가족의 생계부양자이자 노동자로, 여성은 피부양자이거나 보조적인 노동자로 간주되고 있다.

여성 노동 단체의 우려를 입증하듯 현대자동차 공고의 홍보 사진에는 두 명의 남성 노동자만 등장한다. 연령과 성별의 제한이 없다고 했지만 현대자동차가 대표 노동자로 내세운 이미지는 젊은 남성뿐이다.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2일 기술직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알리며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에서 두 명의 남성 노동자가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2일 기술직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알리며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에서 두 명의 남성 노동자가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청년 여성은 왜 지역을 떠나는가

현대자동차의 이번 기술직 노동자 채용 공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국내 현대자동차 생산 공장은 울산과 아산, 전주에 있다. 모두 지역이다. 인구 감소와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 지역에서의 대규모 공개채용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인구학자들은 한국의 초저출생 쇼크의 주요한 이유로 극도로 중앙집중적인 한국 사회의 특징을 든다. 인프라와 좋은 일자리가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에 청년들이 몰린다. 지역에는 청년들이 사라지니 자연히 인구가 감소하고 소멸의 길을 걷는다. 서울과 수도권은 청년들의 노동을 싼값에 사서 쓰니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삶이 이어진다. 누군가와 함께 살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것이 된다. 문제는 지역이 사라지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인구를 공급받지 못하는 서울과 수도권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명료하다. 지역에서 청년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그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일자리는 남녀 청년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남성에게 좋은 일자리와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는 그리 다르지 않다. 적절한 임금과 복지혜택, 안정적인 고용 조건은 남녀 모두 원하는 바다. 그리고 여성이 양질의 일자리를 누리는 것은 남성에게도 좋은 일이다. 혼자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을 여성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여성이 주로 하는 가사 및 돌봄 노동의 부담도 함께 나눠야 하는데 이 또한 좋은 일이다. 가사 및 돌봄 노동을 안 하다가 못 하게 된 남성의 말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2021년 경남여성가족재단에서 펴낸 '경남 청년여성 인구유출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경남의 총인구는 6.8% 증가했지만, 만 19~34세의 청년 인구는 32.2% 감소했다. 또한 청년 남성 인구가 27.7% 감소한 데 반해 청년 여성 인구는 37%로 훨씬 많이 감소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역 대부분에서 출산 당사자인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구직활동과 직장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들이 지역을 떠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물론 청년 남녀 모두에게 좋은 일자리 부족은 큰 문제다. 그런데 지역의 주력산업이 제조업인 경우 여성보다는 남성을 선호하기에 남성은 구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지역 청년 여성은 주로 각종 서비스업, 즉 소위 '여성 직종'에 종사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충분하지 않다. 또한 제조업에서 여성을 채용하는 경우 여성 노동자는 남성보다 낮은 직급으로 채용되어 승진에서 배제되고 월급도 절반 가까이 적게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제작된 홍효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무도 꾸지 않은 꿈'과 2022년 개봉한 감정원 감독의 극영화 '희수'는 바로 이런 지역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경북의 제조업 중심 도시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는 청년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 이 두 영화는 그녀들이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며 떠돌다 마침내 스러져가는 과정을 포착한다. 나는 이 영화들을 보고 한국에서 '여공'의 삶이란 1975년 영자(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서의 그 영자 말이다)부터 2022년 희수까지 별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음에 놀라움과 무참함을 함께 느꼈다. 한국의 산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과 중요성(GDP 대비 27.5%인 한국 제조업 비율은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보다 높다)을 감안할 때 이 분야에서의 좋은 일자리가 여성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지 않는다면 지역소멸과 초저출생 쇼크 그리고 뒤이은 서울과 수도권 소멸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공정한 공개채용을 기대한다

내 아버지의 첫 차는 내 어머니의 첫 차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차를 산 뒤 운전면허를 딴 어머니는 어느 날 슬그머니 운전대를 잡으시더니 그 뒤로 운전대를 놓지 않으셨다. 그 차는 어머니가 운전한 첫 차가 되었고, 아버지는 운전하는 어머니 옆에서 편안히 동행하셨다. 남성이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것을 여성과 나누면 빼앗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이익을 누린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례라고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7월 말 현대자동차의 최종합격자 발표가 기다려진다. 지역에서 고졸 청년들에게 열린 좋은 일자리의 성별 비율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더 큰 이익을 우리 모두가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부디 현대자동차의 공정한 공개채용결과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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